며칠간의 장맛비로 비먼지를 뒤집어 쓴 장독대를 아이 얼굴 닦듯 깨끗하게 닦아 해맑은 빛을 되찾아 놓은 뒤 여름의 뙤약볕이 시작되기 전 서둘러 2천여개의 장독뚜껑을 모두 여니 농원 뜰은 잘 익은 장냄새로 가득하다. 장 담그는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는 일상인데도 장 냄새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이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이다.

 우리는 4계절이 뚜렷하여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향기와 맛도 뛰어나며 빛깔 등 상품성도 우수하므로 우리가 생산하는 농산물에 노력과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부가가치 높은 좋은 제품, 훌륭한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어왔다. “흙은 정직하다”는 신념으로 땀흘리며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서 살아왔지만 언제나 밑지는 농사로 실망도 낙담도 많이 했다. 그러나 가진 땅을 버릴 수는 없다는 책임감 때문에 콩심어 된장 담그고 배추심어 김치 담가서 일가 친척, 친구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맛있다 더 달라”는 성화에 장독이 하나둘 늘어나고 환금하여 보면 상당한 부가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농가소득을 늘리고 지역경제를 살리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재래장 제조허가를 얻었고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장류를 제조, 판매함으로써 안성지역에는 콩재배 농가가 늘어나고 콩값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밭 작물 중에서도 비교적 재배하기 쉽고 판로도 용이한 콩은 건강식품으로 새롭게 인식되면서 재배면적이 날로 증가하였고 국산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콩가공산업도 덩달아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국산콩으로 2년간 발효숙성시켜 만든 고품질장류를 팔려고 하니 공장된장에 밀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가격면에서도 견줄 수 없어서 품질인증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농림부의 전통식품품질인증, 경기도의 경기으뜸이, 전통장 신지식인, 지역명품인증(G마크), 안성명품, 식품으로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의 FDA인증까지 획득하였다.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이것이 먼 훗날 발전의 발판이 되고 기업가치의 씨앗이 된다는 확신만으로 힘든 고비를 넘기며 이제는 수출도 하게 되었다.

 생활환경의 변화와 수입개방으로 식생활이 서구화, 인스턴트화되고 농업도 더 힘들게 된다고 아우성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농경문화의 역사와 농업환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차별화, 고품질화, 환경친화적으로 영농을 하고 새 시대의 발상으로 경영을 하여 나간다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양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중국, 미국 등 넓은 국토의 나라와 경쟁이 될 수 없으니 우리는 이것에 대응할 수 있는 차별화된 영농으로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야하고 우리의 국토와 환경은 자손대대로 온전하게 내려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자기가 신념을 가지고 꾸준하게 일구고 철학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우리농업이 그렇게 절망적이거나 한계기업이 아니라고 본다. 공산품처럼 계절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만들 수 없는 제약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불가결한 식량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경쟁력은 그 어느 것보다도 높다고 생각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이를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지혜와 안목에 달려 있다. 지혜와 안목은 평소에 갈고 닦은 경험과 기술에서 비롯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라는 자부심과 내 기술은 남이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하고 특수한 것이라는 차별되고 독창적인 것이면 단연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다./서분례(2004년 경기도농어민대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