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의 어느날 오후였다. 전화벨이 울려 필자는 “감사합니다. 경비교통과장입니다”라고 응대하자 대뜸 “나 ○○과장인데 당신 어디서 살고 있어?”라는 반말이 흘러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 인천 ××동에 살고 있는데… 왜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밑도끝도 없이 “알았어”하며 끊어버린다. 상급청에 있는 그의 '반말 여운'이 한참 동안 가슴 언저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아직도 못 버린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실로 '그'와는 오래 전, 부서는 다르지만 한 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6살 연하인 것만 알 뿐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반말을 내뱉는 사람은 비단 '그' 뿐만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동생뻘, 또는 조카 또래 상사가 신분 상승에 힘입어 나이 든 부하에게 함부로 반말을 뱉는 것은 그리 좋은 모양새가 못된다. 흔히 '계급 의식'만 가득 찬 상사는 거의가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또한 과도한 자기 존대 성향이 있는 나르시시스트다.
'새파란' 상사가 계급주의적 사고방식과 거만한 행동양식이 배어 있다면 열린 민주사회에 접목하기 부적절한 퇴행적인 사람으로 전락될 수 있다. 계급장 몇 개 더 붙였다고 그것에 도취해 맏형뻘 되는 부하 직원에게 빈정거리며 반말을 한다면 누가 그런 상사에게 호감을 갖고 존경하겠는가. 입 달린 사람이라면 “저 사람 위 아래 모르는 건방진 사람이다”라며 돌아서서 손가락 총을 쏠 것이고 다시 만나는 것조차 꺼릴 것이다. 이런 사람의 심리는 자기보다 힘있는 사람 앞에 아첨하고 약한 사람은 짓밟는 이중 인격자로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과거 한때 일부 경찰 선배들이 시민들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을 하는 바람에 '후레집단' '가정교육 없는 무리'등 심한 질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비인격적인 반말사용은 거의가 사라진 풍토지만 그래도 일말의 뿌리는 여전히 상존한다. 특히 경찰은 계급제도상 종적인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항상 제약성으로 인해 윗사람은 부하에게 의당 예우를 해주기를 기대한다. 또, 아랫사람은 상사에게 으레 갖추어야 할 '무형의 수직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처럼 도식적인 상하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된다면 좋겠지만 종종 볼썽사나운 마찰도 빚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권위주의는 한물간 문화가 됐다. 그런데도 시대변화를 읽지 못한 채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부하에게 반말하는 것은 무례와 무교양의 극치가 아닐까?
사실 경찰 구성원인 간부와 비 간부간에는 '학교 선·후배' '고향 형·아우'등 서로 복잡하게 인간 관계가 얽혀있기에 다양한 갈등이 잠재해 있다. 누구든 한참 '연하 상사'한테 반말을 들으면 인격적인 수모를 당한 느낌이 들어 섭섭해하고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특히 타 조직에 비해 경찰이 가장 빨리 상하관계가 뒤바뀐 조직이다. 그래서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는 일각의 여론도 있다.
아무리 계급 조직일지라도 계급장 몇 개 더 붙였다고 오만불손해선 안 된다. '연하 상사'의 반말이유는 상대방에 대해 멸시, 자기과시, 습관적 어투, 무관심, 보복의식 등 냉소적인 요소가 담겨있다고 한다. 가끔 계급이 낮다고 깔보다 나이 든 부하에게 망신당한 경우도 흔하다. 또한 무심코 뱉은 반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은 상처받고 복수의 칼날을 가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실로 반말은 상호간 증오와 반목을 증폭시키고 건강한 경찰조직 문화를 후퇴시킨다. 더불어 자기인격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자승자박의 행위다. 성경에도 “네가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을 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새해 들어 승진한 공직자들이 깊이 새겨 두고 음미해 볼 경구이다.
/박 정 필(시인·부천중부경찰서 경비교통과장)
반말 유감
입력 200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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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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