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귀가 시간은 언제나 늦었다. 나도 늦었지만 형은 더 심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열 시. 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승합차 가운데 하나를 타고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끼리 승합차 하나를 전세 내어서 함께 등하교를 하곤 했다. 아침 여섯 시와 밤 열 시, 하루에 그렇게 두 번씩이나 부딪치면서도 아이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같은 승합차를 타고 다니는 데다가 학급까지 같은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교실과 달리 승합차 안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한데 섞여 있었는데도 이성으로 인한 긴장감조차 생겨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킹카와 퀸카는 고사하고 이라도 제대로 닦고 타는 인간이 없었으니 말이다. 남학생들에게선 발 냄새와 정액 냄새가 한데 섞인 채 푹 삭은 듯 퀴퀴한 냄새가 났고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일명 ‘바나나 바지'라고 불리는 검정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직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인간은 남자와 여자가 될 권리조차 없었던 것이다. 시험주간엔 더 지독해졌다. 깨끗이 씻으면 시험을 망친다는 징크스 때문에 이건 승합차가 아니라 거의 쓰레기차였다. 게다가 분위기는 또 어떤가. 운전 기사에게 음악을 틀어달라며 카세트 테이프를 건넬 수조차 없었다. 시험 볼 때 그 음악이 귓가와 입가에서 맴돌게 된다나 뭐라나. 장례식 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어쩌면 우리들은 정말로 장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교과서와 참고서 밖의 세상에 대해서, 획일적인 스포츠 머리 너머에 있는 장발, 단발, 퍼머넌트, 염색에 대해서, 미니 스커트와 찢어진 청바지와 귀걸이, 매니큐어…에 대해서. 그 모든 자연스러움은 날마다 화장되었고 우리는 그것의 잔해조차 강에 뿌릴 수 없는, 웃기는 청춘이었다.
아무튼 나는 장례식 차라도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형은 그러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고 3의 야간 자율학습은 밤 열한 시까지였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줄줄이 형을, 고 3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 열한 시, 운동장에는 승합차 대신에 심야 입시 학원 버스와 수험생의 부모들이 몰고 온 자가용 승용차로 넘쳐났다. 나의 어머니도 매일 밤 그 대열에 합류했다. 지방의 공사 현장에 가 있지 않아도 되었다면 아마 아버지도 매일 밤 합류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몸을 보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넣었다. 형의 기사로서 어머니가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날마다 체크했다.
덕분에 집에는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형이 고3이던 그 해에 나는 동네 비디오 대여점의 우수 고객이 되었다. 대여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비디오 테이프가 진열된 선반의 아무 부분이나 가리켰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주세요. 굳이 가리는 장르도, 배우도, 감독도 없었다. 결코 까다롭지 않은 취향. 나는 정말로 우수 고객이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영화 감상법이란 자고로 그래야 하는 법이다.
2. 안전율 (14)
입력 2002-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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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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