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손은 아주 낯설었다. 우주의 끝에 숨어 있던 별 하나가 갑자기 내 손안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별은 의외로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손아귀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당장에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형이 이렇게 허약한 사람이었던가. 그래서 그는 단 한번도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던 것일까. 나보다 먼저 자기가 망가질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쌍둥이처럼 똑같이 바가지 머리를 한 채 형과 내가 제법 다정하게 손을 잡고 찍은 것들이 있다. 주로 놀이동산이나 실외수영장, 피서지 등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친척들의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훨씬 더 많았다.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개업식, 집들이, 돌잔치, 건물 준공식….

그 무렵 우리에겐 많은 친척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친척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준 사람은, 형이었다. 아버지는 전쟁고아였으며 혈혈단신으로 남하한 사람이었다. 고향조차 이곳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친척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친척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아버지의 거래처였을 뿐이었다.

물론 형이 그 모든 사실을 정확히 얘기한 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형은 단지 그들이 우리의 친척이 아니라는 단편적인 진실만을 전달했다. 아버지가 전쟁고아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연들은 내 머리가 굵어진 후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다. 하지만 친척인 줄 알았던 그들이 친척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받았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아버지 거래처의 대소사에 동원되기를 거부했으니 말이다. 그건 마치 어느 날 문득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과 흡사한 일이었다. 거지인 줄 알고 살았는데 사실은 소공자였다 뭐 그런 종류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건 완전히 그 반대였던 것이다.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한동안 나는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아버지를 불신하는 버릇은 어쩌면 그때부터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는 척, 잘난 척하는 형에 대해서 속이 뒤틀리는 습관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 나는 속이 뒤틀린 게 아니라 무서웠다. 또 어떤 진실을 꺼내놓을까…두려웠다, 형이. 쓸데없이 잘난 척한 대가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모욕하게 만든 대가로 형은 그때 참 많이도 맞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심하게 형을 다룬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 속이 시원했냐고?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두려움의 농도만 더욱 짙어졌다. 형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은 형의 말이 진실로 진실임을 반증하는 것이었기에.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되고 싶어하지 않는 건 어쩌면 그 어떤 진실과도 대면하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로 우리 형제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일도 더는 없었다. 형의 손에 대한 기억을 나는 빠른 속도로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