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여기가 교회인 줄 아시오? 우리가 예수처럼 죄인을 사랑하는 줄 아시오? 우리가 되도록 당신의 죄를 샅샅이 찾아내려고 눈을 밝히고 있는 줄 몰라? 당신이 달러 만 몇 천불을 밀 반출하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무엇에 쓰려고 했는지 그게 문제요.”
 
승규는 야유하는 상대의 입술과 핏발선 눈을 보고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내가 자기를 향해 어떤 대결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싸움에는 자신이 없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싸움인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주님! 이제 저는 저자와 어떻게 상대해야 하겠습니까? 현 목사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당신이 목사맞아요?”
 
“예?”
 
“왜 두 번 묻게 해. 당신이 목사맞아?”
 
얼굴을 찡그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이는 쉰이 넘었을까? 현 목사는 새삼스럽게 상대의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나보다는 한 두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젊은이보다는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알 테니까 막 돼먹게 상대하지는 않겠지. 이상하게 상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사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데, 순간 그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짧게 깎은 머리와 약간 옆으로 째진 눈매와 꼭 다문 입은 말을 할 때에야 겨우 벌릴 뿐이다. 상대를 향해서 전혀 가슴을 열지 않을 듯하였다.
 
“왜 대답을 안해? 너 목사 맞아?”
 
사내의 목소리가 갑자가 작아졌는데, 그 목소리가 승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사내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를 보았다.
 
“야, 새끼야, 너 공산당 아냐? 그 돈 갖고 나가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북쪽 간첩에게 주려고 한 거 아냐?”

“예?”
 
승규는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나오면 말로 변명한다 해도 막무가내이다. '네가 공산당아냐?' 이 물음에는 '이미 너는 공산당이다'라는 것이다.
 
“여보시오.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나는 공산당과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내려온 사람이오. 공산당을 미워하는 데는 당신에 못지 않을 거요.”
 
승규는 순간 이 사내와는 정면으로 대결하고 싶었다.
 
“야, 네가 이북에서 내려온 것이 무슨 큰 벼슬처럼 생각하는데,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 중에는 공산당과 더 가까운 놈들이 있어. 당신 공산당이 아니라면, 왜 공산당이 좋아할 일만 골라하는 거야? 왜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야. 너는 목사라는 것을 구실삼아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면서 정부를 비방하고, 무슨 인권 나부랭이 타령이나 하고, 아니 공산당놈들의 인권도 인정해 줘야 해? 사람을 개 취급하는 그 자들에게 사람 대접을 해 줘야 한다는 거야? 인권은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거야. 알았어?”
 
사내는 내뱉더니 갑자기 승규의 긴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갑작스런 일이라, 승규의 얼굴은 사내의 손아귀 안에서 마구 흔들거렸다.
 
“왜 이래?”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두 손으로 사내의 가슴을 힘껏 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