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들의 눈빛은 유난스럽게 반짝거렸다. 전선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매일 의용군 모집 광고와 그들을 독려하는 유세가 열리고 있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얼굴이 불그스레한 40대 장정이 '용산구인민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팻말이 놓여있는 책상에서 일어나 들어서는 그에게 다가와 허리를 약간 굽혔다.
“더운 길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는 용산구 인민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위원장의 인사말은 굳고 딱딱해서 군대 제식훈련 구령소리 같았다. 심 교수는 이자의 오만을 벌써 다 읽었다. 예전에 무엇을 했을까? 용산구청 청소담당자, 아니면 수위, 몸집으로 봐서는 그럴 만하다.
심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위원장의 형식적이고 오만한 인사가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각지 전차 정거장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는데, 뒤따르던 안내 청년이 잰 걸음으로 그의 옆에 와서는 오늘 강연 내용을 말했다.
“오늘 가셔서는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하는 청년들에게 격려사를 해 주셔야 합니다. 교수라는 분이 이야기를 하면 그들도 힘을 얻지요.”
청년은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은근히 말했다. 그런데 심 교수는 그 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의용군으로 입대하는 청년들이 지금 어디 있어요?”
“용산인민위원회 사무실 마당에 있습니다. 용산구에서만도 한 16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제 입대하면 아마 부산을 해방시키고,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를 불어넣어주시면 되겠지요. 전쟁에 승리한 개선군이 되어서 그 넓은 해운대 모래밭에서 해수욕을 한다고 생각해 봐라. 이렇게 말하면, 아마 그들의 용기가 백배 충천할 것입니다.”
심 교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은근히 그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대학 2학년이었던가, 많이 보던 얼굴이다. 대학자치위원회에서 사무일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교수들 뒷조사를 은밀히 하고 있는 정보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친구가 연설할 내용을 말하는구나.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이지, 왜 나를 내몰아서….”
그렇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는 태연하게 그를 따라 이곳까지 온 것이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 뒤뜰에 의용군으로 지원한 청년동지들이 교수 동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 교수는 그 말이 등을 떠미는 것으로 들렸다.
더위에 수건을 목에 두른 청년들은 하얀 헝겊에 빨간 글씨로 '조국통일의 위업은 우리 손으로'라는 글씨가 쓰여진 머리띠를 다 두르고 앉아 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는 땀이 송송이 맺혀 있다. 이 땡볕에 앉아 있는 그들을 보니 심 교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막내 동생이 지금 중3이다. 키가 유난히 커서 아무래도 의용군에 입대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혹시 이 가운데 동생이 있는가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재빠르게 살펴보았다.
그가 청년들 앞으로 다가가자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그 중에 한 사람이 '김일성 장군 만세!' 고함을 지르자 모든 청년들이 따라 함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버릴 수 없는 유산(36)
입력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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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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