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미친선협회 일을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생께서 이 조국에서 지내시는 동안에 불편이 없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곧 제게 통보해 주십시오.”
승규가 수화물을 찾고 공항 대합실로 나왔을 때에야 그 40대는 자신은 미국동포 방문의 실무를 맡은 강 부장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온 한국인 교포들은 승규 외에도 세 사람이 더 있었다.
“목사님도 오셨군요?”
그들 중에 안면이 있는 여자가 승규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마 비행기를 같이 탔으면서도 평양에서 만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이렇게 평양을 드나드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큰 비밀처럼 생각하였다.
그들은 다른 안내자를 따라 다른 승용차로 공항을 떠났다.
“목사 선생님은 제가 특별히 모시도록 회장 동지께서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강부장은 그를 승용차로 안내하면서 매우 친절을 베풀었다. 승규는 혹시 동생이나 철규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을까 두리번 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차에 오르면서 그는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생각되어 씁쓸하게 웃었다.
차는 일제 또요타였다. 기사도 조심스럽게 차를 운전했다. 승규는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보면서 그 옛날 평양의 정취를 찾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대형 붉은글씨들이 주는 압박감에 50년만에 찾아온 평양의 감회는 착잡했다. 왠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강 선생님, 좀 여쭤볼 말씀이 있는데요?”
승규는 기사 옆 자리에 앉은 안내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뭡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제 힘 닿는 데까지 협조해 드리지요. 제가 하지 못할 일은 윗분에게 보고해서 성사되도록 노력하지요.”
안내자는 고개를 돌려 승규를 쳐다보면서 민감하게 관심을 가졌다.
“혹시 제 친구들이 있는데요. 원철규라고, 아마 북조선에도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좀 연락해서 만날 수 있으면 합니다.”
“만나시지요. 아마 원철규 동지께서도 다 아시고 계실 겁니다. 저희가 선생이 이 조국에서 지내실 동안의 일정을 아주 자세히 만들었으니, 염려 마십시오. 우선 형제 자녀 가족들부터 만나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부장은 빙긋이 웃으면서 염려하지 말하라 당부했다. 그러나 철규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차가 고려호텔 현관 앞으로 진입했다. 그제야 엘에이에서 평양을 방문하는 목사들은 으레 고려호텔에 묵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현관에는 한복을 입은 종업원 셋이 나와 반듯하게 서 있었다. 차가 멎자 남자 안내원이 얼른 다가와 차문을 열었다. 앞에 탔던 강 부장이 도열하듯 서 있는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조국을 찾아주신 현 목사 선생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승규가 차에서 내리자 세 여자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는 엉겁결에 허리를 굽혀 답례를 했으나 매우 어색했다. 허리를 폈을 때 여 종업원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의외였다.
끝없는 나그네의 길(7)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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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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