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매장량 세계 2위의 이라크에 전운이 감돈다.

세계 5위의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장기파업이 석유산업을 마비시키고 있다. 세계 7위의 산유국 나이지리아에서도 석유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설에도 1배럴당 30달러 이하에서 횡보를 거듭하던 국제유가가 배럴당 35달러를 넘어섰다. 1991년 걸프전쟁 이후의 최고 수준이다.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제3의 석유파동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위기의식이 별로 없다. 정부가 뒤늦게 유흥업소 네온사인과 옥외조명을 제한한다는 따위의 에너지 절약대책을 발표했다. 해묵은 대책을 먼지만 털어 다시 내놓은 셈이다.

정책빈곤을 보니 실천의지나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도 위기상황에 대해 무감각하다. 거리의 차량홍수나 휘황찬란한 야간조명이 조금도 줄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은 전체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로서 경제규모는 세계 12위다. 그런데 석유수입량은 세계 4위이고 석유소비량은 세계 6위다. 1인당 석유소비량은 세계 11위이나 산유국을 제외하면 6위다. 영국, 이탈리아 같은 산유국이나 소득이 3배나 높은 일본보다 많이 쓴다. 석유생산과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헤프게 쓰는 나라이다.

전국차량대수가 1천400만대나 된다. 88서울올림픽 당시보다 7배나 늘어난 셈이다. 그것도 과시욕이 심한 탓에 대형차가 급증추세다. 로마나 파리를 달리는 승용차의 주류가 경차라는 점과 너무 대조적이다.

승용차의 주행거리도 일본에 비해 2배나 길다. 그런데 자동차 관련세제는 거꾸로 간다. 배기량에 따라 세금을 더 매기던 누진과세를 없앤다. 자동차가 클수록 도로면적을 더 점유하고 도로를 더 파손하고 대기를 더 오염시키는 데도 말이다.

집도 가전제품도 대형화 추세다. 20년 전에만 해도 45평이 넘는 아파트는 호화주택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50평, 60평은 보통이고 100평이 넘는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여기서 여름도 겨울도 잊고 산다. 냉장고, 에어컨, TV도 클수록 잘 팔린단다.

석유위기가 고조된다지만 저마다 나몰라라 한다.
전세계 석유매장량은 1조배럴로 가채(可採)연수가 41년쯤 된다. 공급물량이 제한적인데 매장량도 지역적으로 편재되어 공급독점에 따른 가격등락이 심하다. 세계 최대의 석유소비국 미국은 자국내 유전개발을 억제하는 대신에 국내수요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여 위기에 대비한다. 미국이 세계석유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려고 집착한다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미국-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 1배럴당 50달러에 이를 것이란 비관적인 예측도 나온다. 국내수입량이 연간 8억배럴을 넘는다. 1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연간 8억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월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자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유가인상은 연관산업-제품에 대한 파급영향이 막대하여 경제전반에 치명타를 준다.

1, 2차 '오일 쇼크'로 혹독한 시련을 치렀지만 역대정권은 그 값비싼 교훈을 잊은 듯하다. 미국 행정부의 에너지부를 본떠서 1978년에 만든 동력자원부를 없앴다. YS-DJ정권이 정부조직을 개편한답시고 그것을 석유산업과로 기능을 축소해 버린 것이다. 석유공급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1개 과장이 국가의 석유정책을 총괄하는 셈이다.

비산유국의 에너지대책은 수요관리가 최선이다. 에너지 다소비형의 산업구조를 절약형으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낭비형의 생활구조도 마찬가지다. 이런 노력은 일산화탄소를 감축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0위인 나라에서 화석연료의 소비억제는 이제 선택의 과제가 아니다.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선진국의 압력이 현실화하고 있다.

대체에너지 개발은 국가발전전략 차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장기대책에는 관심조차 없다. 독일은 태양광 발전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2030년까지 30%로 끌어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상황에 대비한 비축물량도 저조하다. 도입선을 다변화한다고 떠들었지만 중동산 의존도가 여전히 75% 이상이다. 같은 처지인 일본도 1970년대부터 유사한 석유정책을 펴왔지만 지금 느긋하다. 장기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역대정권은 에너지정책도 환경정책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석유절약을 국가발전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기를 바란다./김영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