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늘은 오래 기억될 의미있는 날입니다. 부산에서 올라온 5℃이온쌀이 서울 한복판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여러분이 만든 쌀은 분명히 서울 사람들의 큰 환영을 받을 겁니다.”

지난 5월7일 봄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반가운 전시회가 서울 한복판 인사동에서 열렸다. '우리쌀 최고예요! 맞습니다. 맞고요~'전. 우리 쌀을 오브제로 풍년농산쌀문화연구소와 한국벤처농업대학이 공동 주최한 전시회였다.

전시장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정문술 벤처농업학장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는데, 특히 일등쌀을 출품한 부산 쌀 농민 100여명에게 그 노고를 치하하는 덕담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 경기미도 이젠 위태롭구나!”라고 걱정을 한 것은 혼자만은 아니다. 태풍처럼 몰려오는 5℃이온쌀의 자신만만한 기세, 이제 ‘임금님표’ 이천쌀이 막을거냐, ‘대왕님표’ 여주쌀이 꺾을거냐. 사실 오래 전부터 경기미를 앞설 여러 조짐들이 감지되었다. 쌀 유통에 나선 선봉장 나준순 사장이 개인인 점, 쌀에 미쳐 정직하고 치열하게 쌀 고급화에 앞장서 뛰고 있다는 점, 누드RPC 등 고급쌀 만드는 일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우리 쌀시장 9조원 중 3% 점유를 꿈꾸는 매력있는 분이다.

이에 반해 경기미는 어떤가? 옛날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자부심 속에 놀아나고 있다. 농협을 중심으로 한 생산, 마케팅이 전부다. 4년 전인가? 서울 1번지 강남구가 떠들썩했다. 경기미가 서울 진출을 한 첫날, 경기쌀 갤러리는 강남 구민을 모시고 성대한 오픈식을 치렀다.

그때만 해도 경기쌀은 당당한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였다. 경기미는 질과 맛과 홍보에서 타지역을 앞섰다. 쌀도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 그 명성 탓인지 타 지역 쌀이 경기미로 둔갑하여 팔린다는 이야기도 끊이질 않았다.

한참이 지난 올봄 우연히 그 강남에 경기쌀 갤러리를 들러 보았다. “아, 이게 경기쌀 갤러리인가?” 한숨이 흘러 나왔다. 갤러리인지 쌀가게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 수준이었다. 우선 팔 수 있는 쌀이 없었다.

각 시·군별 특징있는 일등미 브랜드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이질 않았다. 각 시·군에는 고급 RPC(미곡종합처리장)가 있다는데, 그 동안 그 RPC들은 지금까지 어떤 쌀을 만들었을까 의아할 따름이었다.

일등미(완전미)는 수율 65% 정도는 돼야 한다. 그래야 고급쌀을 찾는 소비자에게 자신있게 권유할 수 있다. 그래야 쌀개방으로 미국쌀, 중국쌀이 밀려와도 품질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다.

쌀시장에 양극화 현상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고품질 아니면 싼가격이다. 중간은 없다. 가격으로 우리 쌀시장을 지킬 수 없다는 것. 벌써 결론이 나와 있다. 우리 쌀이 5~10배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면 길은 고품질인데, 경기미의 명성대로 고품질 쌀의 생산 인프라는 잘 구축돼 가고 있는가? 과연 어떤 쌀이 경기도의 대표적인 완전미인가? 농림부 한 고위직 공무원이 “완전미가 어떤 것이냐”고 찾았을 때 5℃이온쌀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는 경기도 일등미쌀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머리는 좋은데 경기미는 공부를 어설프게 하고 있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치열성이 부족하다. 자만심이 남아서일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2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답답한 것은 경기 일등미가 대한민국의 스타 브랜드가 되겠다는 꿈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들 수 있는 브랜드 육성없이 경기미의 앞날은 암울하다.

임금님표, 대왕님표가 한 백년 대한민국의 일등일 수 없다. 한 백년 가격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이천에서도 여주에서도 김포에서도 대표적인 경기도 쌀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대표브랜드가 나와야 한다. 농협 브랜드만 믿는 브랜드 정책은 정말 무신경한 정책이고 바보 같은 일이다.

쌀 개방이 코앞이다. 여기서 머물면 역전될 수 있다. 몇 년 전 기억되었던 EQ2000쌀, 청풍명월, 풍광수토 등 충청·전라 지역의 스타를 꿈꾸던 쌀 브랜드는 어디에 있는가. 도민의 절대적 관심이 필요하다./신동헌(농업전문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