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호국의 달 6월, 서해교전으로 나라 안팎이 얼어붙어 있을 때에 “대한의 남아라면 누구든지 군대를 가야한다”고 하면서 군대 홍보 사절단임을 자처했던 유승준이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고 한국에 들어오려다가 입국도 하지 못하고 쫓겨나고 마는 에피소드가 벌어졌다.
당시 월드컵의 4강 진출로 국민들의 열광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한순간에 찬물을 끼얹으며 가라앉았다. 서해대전으로 인해 젊은 장병들이 생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전사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고 사회는 여전히 입영문제에 대하여 달라진 것이 없다. 급기야는 조직 폭력배도 아니면서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에 노골적으로 문신을 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그들의 행동은 조국의 몸에 칼을 들이댄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입영 기피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방의 의무가 가져다 준 일종의 변형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가장 솔선수범해야 할 사회지도층에 있는 이들이 먼저, 군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적당하게 돈과 권력을 통하여 타협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연예인들 중에는 성격장애, 정신장애, 척추질환 등의 진단으로 하는 면제자격의 진단서를 만들어 교묘하게 군입대를 피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군국주의자가 아니고서야 조국과 민족의 수호자로서 최전선 혹은 후방에서 청춘을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서러움을 견디면서 겨우 몇 만원을 받아가며 누가 군대에 자청해서 가려고 하겠는가.
또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지고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해야 하는 취지에 반해, 예비역들은 군면제자들과 제도적으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예비역들이 모이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군대 무용담이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에 난생 처음 몇 년간 집을 떠나 사회와 단절된 군대라는 특수 집단에서, 철저하게 통제된 곳에서 상명하복의 원칙으로 젊음을 보냈으니 빛 바랜 낡은 훈장처럼 오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북한이 선을 그어놓고 서로 대치하는 휴전상태의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라크전이 끝나자 세계는 남·북이 다음의 전쟁 예상국가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전쟁 발발의 가능성과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나라 국민들은 전쟁의 위협에 대하여 어떠한 동요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들의 곁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국민들의 수호자인 국군장병들이 있고 국민들은 조국의 아들인 그들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때 국민들은 유승준의 거짓놀음에 속아서 분노한 나머지 일부 정치인들에게 등을 돌리듯 마음의 문을 닫았지만 이제는 그를 철없던 가수로 기억하여야 한다. 더욱이 지금의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진 스티븐 유이고 한국의 출·입국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는 권력이라는 잣대로 한 명의 미국인을 상대로 개인의 기본권마저 침해하면서까지 입국금지 조치를 강행하는 것은 세계 정서적 모순에 걸려들기 쉽다. 다만, 의무는 피하고 경제적 이익은 챙기고 있는 특수 집단의 신분에 있는 이들과 스스로 공인임을 자처하고 있는 연예인들에게 권력의 잣대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적 제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호구에 빠져 있는 호국정신을 회복시키고 밤잠을 설치면서 초병으로서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국군 장병들의 애환을 달래 주어야 한다./권성훈(시인)
호구(虎口)에 빠져있는 호국정신
입력 2003-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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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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