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수원시 환경사업소 안 길섶에서 우연히 작은 집게벌레 한마리를 봤다. 예나 지금이나 소중하게 보였다. 하지만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레 살펴보니, 잡으려고 하면 집게를 크게 벌리고 물어버릴 듯 싶었던 장군 같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며칠 전 나무에 약을 뿌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허약한 모습이 불쌍해 보여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옮겨 놓았다.

40여년 전 초등학교 시절. 등·하교길과 점심시간, 하루에 세 번씩 지나쳐야 하는 서낭당 고갯길이 있었다. 그 서낭당 마루턱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두 그루의 나무(쌍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는 왕집게 벌레가 많았다. 장마가 시작되는 6~7월이 되면 높은 나뭇가지에 있던 집게벌레들이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아래쪽 나뭇가지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미련스럽고 덩치가 큰 왕집게 벌레는 꼭대기 나뭇가지에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다가 거센 바람과 비에 땅으로 곤두박질 친 채 정신을 못 차린다. 그래서 왕집게 벌레를 잡으려면 비바람이 몹시 부는 이른 새벽에 서낭당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맘 때가 되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잠을 설치고 새벽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비바람 불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서낭당 고갯마루…. 어린 나이에 왕집게 벌레를 잡겠다는 목적이 없었다면 얼마나 무서운 고갯길이었겠는가!

어머니는 “저 놈이 뭣 때문에 새벽부터 요란을 떠나”라며 걱정했겠지만, '나 몰라라'며 무서움과 두려움도 없이 단숨에 달려가던 곳. 꿈과 희망이 있었던 곳. 거기서 그 놈만 보면 용기가 절로 났다. 그때 장맛비에 젖은 내 모습은 흡사 물에 빠진 생쥐를 건져 놓은 형상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온몸이 비에 젖은 채 책보를 허리에 질끈 맨 조그마한 시골 촌놈이 한 손에는 왕집게 벌레를 들고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 모습은 초라했으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했고 눈빛은 초롱초롱 했을 것이다.

곧 교실은 집게 벌레 싸움장으로 변하곤 했었고, “영차, 영차!”, “이겨라! 이겨라!”하는 소리가 학교 전체를 뒤덮었다. 책상은 왕집게 벌레의 링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패자가 되고 남아 있으면 승자가 된다. 왕집게 벌레가 집게를 양쪽으로 크게 벌리고 용기백배해 진격하면 작은 놈은 “나 살려라!”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간다. 그러다보면 좁은 책상에서 떨어져 그대로 황천길이다. 이기고 나면 어린 마음에 어깨가 으쓱해 진다.

이렇게 자연이 가져다준 어린 시절의 정서는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하지만 20여년 만에 찾은 고향은 아파트와 공장들만 들어서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무지개가 떠 있었던 서낭당에는 큰 공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서낭당 쌍고목 나무 대신 용틀임하며 올라가는 연기….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유난히 어린이들이 많다. 잘 먹이고 잘 입혀서 그런지 한결같이 예쁘고 개성이 있어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짧은 시간에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아이, 층층이 숨어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정지하면 뛰어나와 007 영화의 주인공 흉내를 내는 아이, 게임기에 도취돼 누가 타고 내리는지 관심도 없는 아이….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 기 살리기에 기둥뿌리 뽑히는 줄 모른다.

자전거 보관대에는 멀쩡한 자전거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내던져져 있고, 게임기는 유행이 지났는지 쓰레기 통에 내던져져 있다. 조그만 고장이라도 도무지 고쳐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발 뒤꿈치에 바퀴가 달린 운동화가 유행이란다. 오래 타면 인체에 해롭다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너무 좋은가 보다. 엘리베이터에는 쉴 새 없이 중국음식, 피자, 치킨 등을 배달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고 해달라는 것은 척척 해 주는 덕택에 키도 커지고, 몸무게도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력과 체력은 옛날 어린이보다 약해졌다는 조사가 나온다.

어제 본 길섶의 집게벌레 같이 허약해진 걸까? 어린이들이 왕집게 벌레를 가지고 놀던 옛날의 우리들처럼 건강하며 용기백배하고 희망과 꿈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기에 적는다./임병석(수원시 환경사업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