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런데 인류가 이런 피해를 입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흑사병,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돌림병이 생겨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있었다

통계적으로 전염병 대유행은 일정한 주기로 발생한다고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1세기께 전염병 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스'와 같은 질병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난번 홍콩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이 혹시 재앙이 아닐까 하고 염려했는데 진정국면에 들게되어 다행으로 생각된다.

사스, 그 다음은 또 어떤 것이 나타날까 염려된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사스 발생으로 우리는 잃은 것도 있지만 우리의 노력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살펴보면, 첫째로 방역시스템 재정비의 필요성 대두이다. 현재의 방역체계는 70년대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경제성장과 문화의 발달로 사회 많은 부분이 변하고 정부조직도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유독 방역체계는 옛 모습 그대로인 데다 구조조정으로 감축된 인원이 보강되지 않고 있어 방역체계에 많은 허점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전 국민의 건강보험 실시와 개원 병원의 증가로 위생수준이 향상된 면이 있어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적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사스의 국내 전파를 막기 위해 전염병 관련 부서의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였는데 방역과 검사시스템의 미흡 및 인력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둘째로 자연환경의 보전과 복원이다. 자연과 더불어 순리대로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더 큰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초식동물인 소에게 소 장기의 일부를 먹여 비용을 절감하려고 했는데 광우병이 발생하여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왔고, 열대지방의 밀림을 파괴한 결과 에볼라바이러스 등 신종 질환이 나타났으며, 애완용 동물을 아프리카에서 수입함으로써 원숭이 두창바이러스가 나타났다.

미생물도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무섭게 보복을 가한다. 항생제로 통제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뿐만 아니라 세균성 이질도 항생제 통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욕심을 통제하지 않는 한, 미생물은 생존을 위하여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류를 더욱 위협하게 될 것이다.

셋째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협조이다. 전염병이 발생되면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가 되며 국가적인 통제시스템에 따르려면 다소 불편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과 이웃을 보호하는 수용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사스 의심환자에 대한 격리입원시 대부분은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잘 협조하였으나 일부 공항에서 검역서를 허위기록하거나, 가택격리 반발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며, 격리병원에 대한 지역주민의 집단 이기주의적 시위는 위기에 대처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은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계속 진행될 전염병과의 전쟁 승패는 반발하는 신종 질환에 대한 방어체계 구축을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로 인식하고, 방역 및 연구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과 보강에 어느 정도 역점을 두고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손진석(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