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요, 아빠, 아빠가 쪼잔하게 왜 그래요. 엄마에게 전부 맡기세요. 과외 안하니까 제 과외비도 안나갈 것이고.”
 
“말조심해, 쪼잔하게라니?”
 
내가 버럭 화를 내며 찬수의 말을 막았다.
 
아버지가 찬수와 새어머니를 새삼 노려보듯 눈에 힘을 주었다.
 
“잘 들어. 그래, 그동안 남의 새끼 보듬어 안고 쏟아져 들어간 돈이며 난리친 거 다 없었던 걸로 하자. 이제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찬수는 학교 끝나면 기술학원을 나가도록 해라. 어떤 기술이든 네가 평생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우도록 해라.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지 결정되면 그 학원에 나와 함께 가서 등록하자.”
 
그 때 새어머니가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젊디젊은 아이를 재수도 안 시켜보고 기술자로 만들어 버리면 안 되지요. 내년 한 해 재수시켜서 전문학교라도 보내야지요.”
 
“꿈도 크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기술자가 어때서, 제대로 기술 한 가지라도 가질 수 있을지 그것도 불확실한 판에 대학을 보내겠다구? 허영과 탐욕 접어. 적성과 능력대로 살아야지 안 될 일 물고 늘어지면 시간낭비에 돈 버려, 사람까지 병신 만들어. 사내가 기술 한 가지 가지면 더 이상의 재산이 없는 거야.”
 
찬수가 나섰다.
 
“아버지 말씀 맞아요. 대학 가라면 나는 또 집 나갈 겁니다. 공부의 '공'자만 들어도 멀미가 나고 구역질이 나거든요.”
 
새어머니가 찬수의 얼굴을 찌를 듯 쏘아보면서 혀를 찼다.
 
아버지가 다시 음성에 힘을 주었다.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어. 찬수엄마는 더 늙기 전에 나가서 일을 해라. 내 월급 눈독 들이지 말고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 노후를 위해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벌어두어야 늙어서 굶지 않아. 꿈에라도 내 도움 바라지 마라. 어떤 등신이 밑 없는 독에 물 붓기 식인 당신 같은 여자에게 돈을 주겠어. 물론 기본적인 생활비는 지금처럼 품목별로 적어내면 내가 지급한다. 가장인 도리는 할 것이니까.”
 
“남편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내가 왜 나가서 돈을 벌어? 남편 얼굴에 똥칠하는 일이지. 그리고 나는 노동은 못해 나는 이집의 식모가 아니고 주부고 아내이니까 가정 운영권은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고 이달부터 월급은 나에게 넘겨야 해. 그것이 순리니까.”
 
아버지가 새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냥 웃어버린다.
 
“이것 봐. 꿈 깨라. 너는 주부로서도 어미로서도 아내로서도 이미 자격상실이 된 여자야. 자기자리 찾고 싶으면 몇 십배, 몇 백배로 노력을 해야지. 너보다 10년 20년 연상의 사람들도 청소부·간병인·가정부로 일하는 사람 많아. 남편 얼굴에 똥칠? 핑계대지 마라. 나 전혀 아무렇지 않으니까 길다란 손톱 잘라내고 일터로 나가. 허구한 날 얼굴에 떡칠하듯 화장하고 손톱 다듬고 수다떨며 동네방네 돌아치고 다니는 것이 바로 남편 얼굴에 똥칠하는 거야? 명심하고 일자리나 구해.”
 
나는 새삼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기강잡기 대처가 마음에 들었지만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아서인지 이즈음 아버지의 얼굴은 많이 밝아지고 혈색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