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간 나면 형님 도와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밤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하시는 거요?”
“사표수리된 다음 날부터 낮장사를 시작했어. 낮에도 제법 쏠쏠하게 팔린다! 정말, 무슨 일이야? 사표 수리된지 사오일 밖에 안됐으니 어디 다른 곳에 취직된 것도 아닐테고, 이력서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할 시간 아니야?”
그는 고구마통을 열어 익은 고구마 한개를 꺼내 후다닥 껍질을 벗기곤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후후 불어가면서 허겁지겁 그것을 먹었다. 달고 맛이 있었다.
비로소 식욕이 왈콱 당기면서 그가 다시 꺼낸 고구마의 껍질을 벗기는 동안 붕어빵을 대여섯개나 집어먹었다.
“천천히 먹어! 체한다. 밥 굶고 다니는 노숙자처럼 왜 이렇게 허겁지겁이야?”
그가 유리병의 물을 따라 권하며 말했다.
“사실 점심을 굶었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맛이 있어요? 지금껏 내가 먹어본 붕어빵 군고구마 중에 이렇듯 맛있는 것은 처음이네!”
“쯔쯔…. 가엾어라! 자네 빈 밥통이 맛을 내는 거야. 배가 고프니 맛이 있다는 말이지. 도대체 멀끔하게 차려입고 어디로 쏘다니기에 밥까지 굶고 헤매?”
그는 내 행적이 끊임없이 궁금한 모양으로 안타까운 시선을 나에게서 떼지 못했다.
“낮에도 장사가 잘 된단 말이지? 한달 수입이 월급보다 나아요?”
“시작한지 얼마 안됐으니까 정확한 산출을 낼 수는 없지만, 비슷해질 것 같애. 우리 월급이 실제 적지 않았거든. 개인기업 같았으면 우리같이 호봉만 높고 하는 일은 별로인 사람들은 진작 잘렸어. 수만명 의사들의 고액 회비와 단체의 친목행사로 제약회사의 지원으로 생긴 수익이 원자본인, 주인없는 눈 먼 돈이었기에 직원들이 6년 10년 잘 살아온거지. 그런데, 지금의 국장과 사장과 의사회 이사들이 현실을 똑바로 천착한 거지. 진작 다 정리해야 했어.”
그는 의외로 신문사 집행부의 처리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그래도 모두 밥줄이 떨어졌잖아요.”
내가 반응해 보았다.
“염치들이 없었지. 우리 같은 6, 7년차 늙다리들은 말이야. 그러나 기다려봐, 공기자나 편집부 여직원 민기자 등은 틀림없이 재임용될거야. 젊지, 실력있지, 호봉 높지 않지, 애사심 강해서 시간 구애없이 온몸으로 뛰어들어 일 잘하지, 솔직히 당신같은 사람 흔치 않거든.”
“형님, 왜 이러세요, 송구스럽게요…. 형님 예상, 틀리지 않았어요. 저와 민기자 다시 부르더라구요….”
“뭐야? 벌써 재임용 통고가 왔다는 거야?”
그가 화들짝 놀라면서 소리를 높였다.
“오늘이요….”
나는 죄지은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됐구나? 축하한다! 잘됐다!”
그가 내 두 팔과 손을 끌어 잡으면서 소리쳤다. 그의 축하 몸짓이 너무 요란하여 가슴이 아팠다. 작위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던 때문이다. 두 팔 두 손을 잡다못해 내 상체를 부둥켜 안고 빙빙 돌 듯 하는 그의 표정이 창백했기 때문이었다.
생명의 늪(232)
입력 2004-12-31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4-12-31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