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나의 '코란도'가 눈앞에 나타나 골목으로 접어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승용차로는 좀 거칠어 보이는 4륜구동차를 유독 선호하는 이유를 그녀는 용문계곡의 산집에 드나들때 거친 도로에 강하기 때문이고, 평범한 것은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12시가 넘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차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골목으로 접어드는 코너에 번들거리는 벤츠 한대가 섰다. 앞에 탄 여성이 남자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여성이 데려다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남성이 얼굴을 돌려 여자의 뺨을 두손으로 끌어당겨 긴 입맞춤을 했다. 여성이 차문을 열고 나오고 그녀의 손 흔듬이 신호이듯 벤츠는 미끄러져 갔다.
나는 다시 누나의 차가 나타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대로변에 시선을 돌리다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으로 입을 벌렸다. 그리고 골목으로 또각또각 접어드는 여인을 홱 돌아보았다. 그 벤츠는, 신문사 기자들이 선망하는 지하 주차장에서 몇 번 본 적이있는 공보이사의 승용차였던 것이다.
얼음같이 찬 기운이 등줄기를 찌르르 타고 내리면서 알 수 없는 열기가 순식간에 전신을 태울 듯 휘감았다. 배신감으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들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확신감이 왔다.
나는 몸을 날리듯 달려서 그녀 앞을 막아섰다. 그녀가 심히 놀란 듯 짧은 비명과 함께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이구 놀랬네…아니, 찬우씨!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지?”
나는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고 돌려세웠다.
“우리, 이야기 좀 해요.”
나는 그녀를 내가 서 있던 대로변 쪽으로 이끌었다.
“찬우씨 왜 이래? 이것 놔, 갈테니까.”
그녀가 내 거칠은 팔짓을 뿌리치며 화를 냈다.
“단도직입으로 물어볼게요. 누나가 잉태했다는 뱃 속의 태아, 누구의 것이죠?”
“찬우씨….”
그녀가 그야말로 눈과 입을 함박만큼 벌린 채 나를 쳐다 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진실을 말해 주어요. 누나는 공보이사와 헤어지지 않았어요. 조금전 까지도 같이 있었잖아요. 긴 입맞춤으로 잠시의 떨어짐도 서로 깊이 아쉬워 하더군요.”
그녀는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듯 벌린 입을 닫고 시선도 내렸다.
“어서 밝히라구요. 하늘에 맹세코 진실을 말하라구요. 두 분이 나를 갖고 노는 것 같아요, 더 견딜 수 없어요.”
“견딜 수 없으면?”
의외로 그녀가 반격을 해왔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마치 그녀 본색의 일면을 보는듯 해서였다.
“다, 그만 두겠어요.”
“나에 대한 사랑도, 직장도?”
매섭도록 그녀는 다시 반문했다.
생명의 늪(235)
입력 2005-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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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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