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도 않아유. 눈 오시는 날은 짝꿍 손님들이 더 많을 때도 있어유. 차는 아랫동네에 주차시키고 둘이 부둥켜안고 미끄러지면서도 올라와유. 눈 내리는 산의 풍경을 즐기는 것인지…. 방이 두 세 개쯤 더 있으면 돌아가는 손님은 없을 텐데….”
“알았어요, 할머니. 우리는 닭만 먹고 곧바로 갈게요.”
“하이구 아가씨야 주인이신데 온종일 계시고 주무시면 또 어때서요, 조금만 기다려요.”
노인이 부라사랴 방문을 닫고 나갔다.
“아, 피곤해!”
연희누나가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나는 노인이 베고 누워 있었던 것 같은 베개를 끌어당겨 그녀 머리에 받쳐 주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계속 밝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민기자의 전화 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용건이 있어서 이곳으로 온 것입니까?”
나는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서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녀가 눈을 떠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져서요.”
그녀가 일어나 앉았다.
“작년, 그러니까 2004년 10월까지 만 5년째 저 할머니가 무상으로 이 집과 땅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제 좀 회수할까 해서.”
“회수해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사실은 이 문제도 찬우씨와 한번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싶었는데, 어떻게 기회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어머니 생각이,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은 이곳으로 나오시겠다는 거야. 처음에는 찬우씨가 우리 집으로 입주하면 아들 재미 한번 보시겠다 하시더니 이제는 20여년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온 슈퍼마켓일이 힘들어서 더 못하시겠다는 거지. 당신 노후를 위해 사둔 이곳으로 오셔서 정양생활을 하시겠다는 거야.”
“어머님이 무슨 지병이 있으셨나요? 몸은 야위셨어도 강단이 있어 보이셨는데….”
“옛날에 결핵을 앓으신 적이 있었어. 지금은 완치가 된 상태인데도 항상 그 병에 대한 강박증을 갖고 계셔. 항상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으시다는 거지.”
“그래서 어머님이 이곳으로 들어오시게요? 그럼, 슈퍼마켓은요?”
“우리가 이곳에 와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줄은 몰랐네. 우리가 결혼하면 나는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고, 어머니가 굳이 이리로 들어오시면, 나는 도리 없이 슈퍼마켓을 맡아야 되지 않겠어?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가능한 좀 옆에 계시게 하고 싶어. 결혼해도 분만달인 7월까지는 눈치 무릅쓰고 회사에 나올 생각이고, 아기를 낳으면 산후조리 등 역시 어머니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하거든. 그 기간이 길지는 않을 거야. 어머니는 벌써부터 여기 오실 생각으로 들떠 계시니까. 그래서 여기 할머니가 늦어도 가을까지는 집을 비워 주워야 하므로,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찬우씨와 함께 온 거야.”
“가벼운 드라이브 목적은 아닌 줄 느꼈습니다.”
생명의 늪(273)
입력 2005-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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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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