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전화세요?”
민기자가 가볍게 물어왔다.
“친척이요.”
다섯시 경. 민기자와 밖으로 나왔다.
“낚지볶음 먹으러 가요!”
민기자가 거침없이 내 바른 팔을 꼈다. 나는 앞뒤를 살피면서 그녀의 팔을 풀어 냈다.
“신문사 동네에서 왜 이래요, 남들이 오해를 하게.”
“아무도 오해 안해요. 공기자님은 보수적이에요. 젊은 남녀끼리 데이트 하면서 팔짱 정도 끼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이라구요. 근엄한 낯빛으로 무슨 회담하러 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녀가 다시 팔을 걸어왔다. 마침 빈 택시가 우리들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전철을 이용할 생각이었으나 그냥 택시를 탔다.
무교동에서 내렸다. 어른들이 말하는 옛날의 낙지촌은 없어졌지만 종로 1가 쪽의 한 골목에 몇 집이 모여 있음을 본적이 있어 그곳을 찾아 갔다.
“오랜만에 산낙지를 씹고 싶어요. 우리, 소주에다 낙지회 먹어요?”
그녀가 식탁을 마주하고 앉자마자 말했다. 말은 동의를 구하듯 하면서 이미 그녀는 종업원에게, “산낙지 한 접시, 낙지볶음 한 접시, 조개탕 하나, 밥 두 공기, 소주 두 병” 하고 소리쳤다. 소주와 토막 친 산낙지가 먼저 나왔다. 토막 쳐 놓았건만 살아있는 낙지토막들은 하얀 접시 가운데서 꼬물거렸고 힘이 센 토막들은 가상자리로 기어나오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살아있는 생물에 대한 식탐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혐오감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에 대한 아픔이랄까 인간의 잔혹성이랄까 정신적인 것이 먼저 떠올라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횟집에서 살점 다 도려내어진 광어가 대가리와 뼈와 꼬리만 남은 채 그러나 제 살점을 업고 식탁에 얹혀져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음을 볼 때나, 방송 리포터가 고깃배 위에서 꿈틀거리는 생선을 통째로 입안에 우겨 넣고 씹을 때나, 꼬리부분이 미처 다 다들어가지 못해 입술 밖에서 퍼득거릴 때나, 지금처럼 토막친 낙지가 살아서 비틀며 꾸물거리는 것을 보면 '싱싱하다'는 생각보다 그것에 대한 연민이 앞섰던 것이다.
“뭘 내려다 보고 계세요? 건배하자구요!”
민기자가 내 잔에 소주를 넘치게 따르면서 재촉했다.
“그럽시다!, 건강을 위하여!”
“한번 더요, 두 사람의 멋진 결연을 위하여!”
나는 말없이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한번 더 부딪쳤다. 그러나 곧 쓰디쓴 웃음을 머금었다. 그녀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고서도 모른 척 했다. 이날따라 소주가 달았다. 소주 반병이 비워질 때까지 낙지토막 하나를 초고추장에 넣어 숨죽기를 기다렸다가 간신히 한 두점 씹었다.
“어머, 어머…어쩜, 산낙지를 못 먹는 젊은 양반이 다 있네에? 아니, 찬우씨! 한주먹에 남의 코뼈를 부러뜨려 놓는 터프한 혈기왕성 청년이, 어찌해서 요렇코럼 맛있는 것을…, 이렇게 한입 넣고 우적우적 씹어 봐요.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스트레스도 확 풀린다구요!”
생명의 늪(288)
입력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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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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