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뒤따라 쫓아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자, 데려다 줄게.”
 
호텔 로비에서 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순식간에 바른 팔을 들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나… 더 갖고 놀지마….”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는 휘청휘청 건들건들 외등이 눈부신 호텔을 벗어났다.
 
10시가 다 되어 오피스텔로 들어섰다.
 
내 초라한 몰골과 같은 커다란 비닐백을 책장 위에서 내렸다. 옷가지와 책과 세면도구를 주섬주섬 집어 넣었다. 잠시도 그녀의 오피스텔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방의 키를 경비실의 남자에게 맡겼다. 집주인이 금방 찾으러 올테니 잠시만 보관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연희누나의 휴대폰을 찍었다. 그녀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미안해요! 오피스텔 열쇠, 경비실에 맡겼으니, 찾아 가십시오.”
 
“아니, 찬우씨.”
 
그녀의 비명같은 소리가 고막을 찢듯했다. 나는 전화기를 닫아버렸다. 연방 휴대폰이 자지러지게 울려댔다. 받지 않았다.
 
거리에 나서자 갈 곳이 없었다. 분노와 흥분 상태에서 칼로 무를 자르듯 거침없이 행동은 했지만 정작 오피스텔 건물을 나서자 막막했다.
 
시간을 보았다. 10시가 좀 넘어 있었다. 택시를 세워타고 신문사로 나갔다. 12시까지 빌딩의 현관셔터를 내리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고 경비실의 마음씨 좋은 정노인이 안경 넘어로 이 시간에 웬일이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밤을 새워야 할 일이 좀 있었어요. 제가 저희 사무실 관리는 잘 할테니까 신경쓰시지 마시고 주무세요.”
 
“건강 생각들 하면서 일해요…. 젊다고 몸 혹사시키면 늙어서 나처럼 힘들어져요….”
 
“예, 아저씨!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무겁고 커다란 비닐 트렁크를 팔이 늘어지도록 힘겹게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8층에 내렸다. 사무실의 문이 잠겨 있었다.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다시 경비실로 내려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 섰다. 그런데 아래서 올라온 승강기에서 열쇠뭉치를 든 정노인이 내렸다. 바로 뒤쫓아 올라온 것 같았다.
 
“제가, 다시 내려가려 했는데….”
 
노인이 말없이 문을 열어주고 내 옆에 이불덩치처럼 놓여진 커다란 트렁크를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불을 밝힌 사무실이 휑하니 넓어보였다. 직원들이 득시글대는 대낮보다 두배는 커 보이고, 무엇보다 실내 공기가 서늘했다. 난방을 껐다고 해도 낮의 온기가 조금은 남아 있으려니 했는데, 의외로 썰렁했다.
 
가방을 내 책상 뒤쪽에 끌어다 놓고 칸막이 안 국장실의 응접소파에 몸을 뉘어보았다. 몸에 닿는 가죽 소파의 찬 기운이 전신을 더욱 오그라붙게 했다. 특히 소파는 빌딩벽 쪽에 놓여져 있어 2월초 늦은 밤의 찬 기운이 벽을 통해 고스란히 소파에 묻혀진듯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