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그녀와 영화감상을 했다. 영화관을 들며나며 또한 거리를 걸으면서 민기자는 거침없이 내 팔짱을 꼈다. 나는 그녀가 팔을 끼고 걷는데 불편하지 않게 도와는 주었으나 그녀를 보호해주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삼겹살에 소주 딱 한병씩만 하자구요!”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일직 당번인 주차 경비아저씨가 나를 믿고 외출을 했으면 하던데…맘에 걸리네….”
“무슨 말씀입니까, 공기자님은 의사회 건물 경비가 아니라구요. 신경 쓸 것 없어요.”
민기자가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 면박을 주면서 대폿집 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일요일 저물녘이어선지 술집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여느 날의 이 시간 쯤이면 샐러리맨들로 꽉 차 법석거릴 술집들이 어느 집 할 것 없이 한산했다.
소주 한병씩의 약속이 두 병씩으로 늘어났다.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취기가 올랐다. 그러나 더 이상 기분이 상승되지는 않았다. 심층 바닥에 엎드러져 있던 응어리 하나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격심한 통증을 동반하면서 기어이 뒤틀어 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했다. 운전연습으로 머리와 몸을 동시에 움직이거나 회화하기 영어단어 외기로 정신을 쏟을 때는 꿈쩍않던 응어리들이 술을 마셔 몸이 더워지면서 솟구친 것이다.
“왜요? 가슴이…아프세요? 협심…증이세요? 얼굴이 창백 하시네….”
민기자가 심하게 찌푸리고 있는 내 얼굴을 풀어진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건강, 조심하시라구요. 장안의 제일 큰 병원만 출입하는 베테랑 의료전문지 기자가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문제 있지요.
“옳습니다. 이제 술은 그만 마십시다. 내일은 일이 여간 많지 않거든요. 민기자님, 오늘 베풀어준 따뜻한 정, 잊지 않을게요. 제가 두고두고 술도 사고 밥도 사고 갚을게요! 그러나 이제는 다시 그런 신경쓰지 말아요.”
“신경쓰든 아니쓰든 그건 내 마음이니까 공기자님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은 없구요, 어쨌든 끼니는 자알 챙겨 먹어야 한다구요, 요즘 공기자님 거울 보세요? 얼굴이 많이 상했다구요. 마치 실연당해서 끓탕하는 사람처럼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구요, 제가 보기에 너무 많은 일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매번 톱기사를 공기자님이 내지 않아도 되는데, 기어이 써내야 하는 것처럼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 일만도 얼마나 많은 시간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운전학원 회화학원 왜 또 한꺼번에 뛰느냐구요. 병나요, 병난다구요.”
술기운 때문인지 민기자의 관심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고마웠다.
“오늘은 왜 이사님에 대한 뉴스가 없습니까? 오연희 차장님과 자알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민기자를 만나면 어김없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공보이사에 대한 정보가 이날은 일체 올려지지 않기에 불쑥 먼저 꺼내어 보았다.
생명의 늪(328)
입력 200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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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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