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에게 일주일 후에 무엇을 발표한다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우선 지난 밤의 궁금증부터 풀어 놓았다.
“아빠가 나무랄 틈도 주지 않고, 한 달 안으로 찬우씨와 결혼하겠다고 내가 앞질렀죠! 찬우씨 아버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고 했어요.”
나는 블랙커피를 뽑아 건네면서 기운차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예상했던 대로 일주일 후에 나와의 결혼을 직원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조금은 멍한 기분이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한 적도 없었지만 더욱이 한달 안으로 결혼을 할 것이란 생각은 꿈에 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정(通情)이 바로 결혼의 약속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녀에게 청혼 여부의 문제를 따질 계제는 천만에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멋대로 공주님! 결혼 일정은 나와 먼저 의논을 해야 되는 것 아니요? 당장은 내 한몸 눕힐 잠자리도 불분명한 동가숙 서가숙 하는 건달인데, 그대와 결혼을 불쑥 먼저하면 어찌되는 거지? 내가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제가 서두는 거라구요. 언제까지 경비실에 거처하느냐구요. 그게 어디 사람사는 것이냐구요. 걱정 마세요, 두 사람이 살기에는 좀 넓지만, 5년 정도는 마음놓고 거처할 수 있는 공간이 있걸랑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우리 엄마 병원 3층이요. 2년 전에 엄마가 그 건물을 인수하면서 3층에다 살림집을 만들었거든요. 우리 가족이 그곳에 거처할 작정으로요. 그런데 마침 효자동에 신축 중이던 외할아버지 회사의 빌라가 완공되어 우리는 그곳으로 이사하고 3층집은 비게 되었어요. 엄마는 3층을 다시 사무실 형태로 내부를 바꾸어 세를 놓을 생각을 했지만 한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그냥 시설을 바꾸기가 아까웠던지 ‘채형이 결혼하면 여기서 살아도 될텐데’ 했었거든요. 그 3층에 우리가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지요.”
“이봐요, 민기자 우리는 아직 부모님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인데 그리고 내가 그 3층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인지, 내 의견은 상관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직원들에게 떠벌려도 되느냐는 말입니다.”
“우리 나이가 넘치는 성년인데 부모님 허락이 왜 필요하지요? 그래서 일주일 후에 밝히겠다고 한 거예요. 찬우씨가 이번 토요일에 우리 집을 다녀가면, 우리는 그것으로 양가 부모님께 예를 갖추는 것이라구요. 그리고 집 건은 당장 방법이 없잖아요. 부천의 찬우씨 아파트는 아직 1년여 더 있어야 전세든 사람이 집을 비울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제가 아버님께 여쭈어 봤었거든요.”
“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 그것 뿐이 아니잖아요. 사내 결혼을, 그것도 편집국에서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이 결혼을 하면 누군가 한 사람은 직장을 옮겨야 할 것인데, 그 문제는 생각해 봤어요? 일주일 후니 한달 안이니 촉박하게 굴지말고 한 건 한 건 차근차근 함께 의논하면서 무리하지 않게 하자구요.”
“아녜요, 나는 오늘부터라도 당장 찬우씨와 함께 있고 싶다구요! 일단 내가 사직서를 낼 거예요. 솔직히 나는 방송국 기자로 옮기고 싶어 시험 준비를 하고 있걸랑요. 그게 여의치 않으면 친척분이 대표로 계시는 약계(藥界) 신문으로 옮기면 돼요.
생명의 늪(367)
입력 2005-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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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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