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코스요리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달아 나오는 음식이 가짓수는 결코 많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유독 정성스럽게 느껴졌다.
후식을 먹는 시간이었다. 민기자의 어머니가 결혼식 날짜를 언제쯤 잡았으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물어왔다. 그러다 이어 “다음주 토요일 점심시간이 어떻겠느냐”고 구체적으로 일정을 잡아서 다시 말했다.
다음주 토요일이면 오늘이 월요일이니 1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나는 조금은 황당하여 웃음을 머금다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가을쯤에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고 자세를 바로했다. 그러자 나를 막듯 민기자가 나섰다.
“내주 토요일이면 너무 멀어요. 저는 이번 토요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경악하여 민기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그녀의 아버지가 팔을 뻗어 내 손을 지그시 힘주어 잡았다. 모녀간의 대화를 일단 먼저 들어보자는 내용인 듯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이어 말했다.
“나도 이번 토요일이 좋을 듯 하여 호텔 몇군데를 알아보았지만 저녁시간 외는 자리가 없었다. 내주에도 5월 가정의 달 행사가 많아 여전히 장소얻기가 어려웠지만 우리 집안 혼례단골인 H호텔 지배인이 만들어주기로 했다. 고맙지 뭐냐!”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주 토요일 12시, H호텔 레스토랑이네요. 찬우씨, 우리 결혼식에 초청할 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 좀 해보세요. 그런데 아빠, 저희 쪽은 오십명 정도 되나요?”
“글쎄나 아직 구체적으로 뽑아보지 못했다만, 좀 넘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아버지가 응답했다. 나는 모든 일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척되고 있음에 편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무시를 당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함께 있고 싶다는 민기자의 앞세우는 이유 보다 관리실에 거처하고 있는 내 입장을 그들이 배려하고 있고,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내 주변의 허전함을 막기 위해 자기 집안 내력의 결혼의식으로 끌어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내 의견이 있을 것도 없었지만 차라리 편하다는 속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등신처럼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그녀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찬우씨는 여러 가지로 좀 어리둥절할 거야. 그러나 채형이의 뜻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했다기에 날짜며 결혼식 장소 등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잡은 것이니, 특별한 문제 없으면 협조해 주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하객관리에서 축의금 접수 문제에 이견이 있으면 찬우씨 입장을 존중할 수도 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실은 저는 시종 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나는 세 사람을 동시에 한번씩 돌아보면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채형이가 구체적으로 계획을 자초지종 말하지 않았나요?”
그녀의 어머니가 내 표정이 조금은 생뚱스러웠던지 반문했다.
“전혀요.”
“저런…그럼 내용도 모르면서 채형이 뜻을 따른다고 했어요?”
“따른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 좋습니다. 예식장이 아니고 장소가 레스토랑이라는 부분과 하객관리는 무슨 말씀이신지만 궁금합니다.”
생명의 늪(371)
입력 2005-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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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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