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늪 <400>

 “그냥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나는 어쩌란 말이요?”
 뒷등에 대고 그가 말했다. 돌아보았다. 코를 골고 잠자던 사람같지 않게 멀쩡한 표정으로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하도 달게 주무시기에 밖에서 기다릴까 했습니다.”

 “아, 정말 달게 잤어요! 나갑시다, 술도 고프고 배도 고픈걸. 공기자님 무얼 좋아해요? 나는 닭꼬치구이에 홍합국물 쭈꾸미 양념구이를 좋아하는데. 병원 건너편에 가면 그런 포장집이 있어요”
 “저는 다 좋습니다!”
 사실 내 뱃속은 그때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명교수가 음식을 들먹이기 시작하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시장기가 왈칵 솟구치면서 입속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병원 건너편의 바른쪽으로 꺾어진 골목의 막다른 곳에 포장집이 있었다. 전혀 장사가 될 것 같지 아니한 주택가 골목안에 버티고 있는 허름한 포장집을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꽉 차 있음에 또 한 번 놀랐다.
 음식을 만들던 두 여자 중 주인인 듯싶은 나이든 여자가 명교수를 보고 반색을 했다.

 “환재이 아자씨 오시네! 가만예, 쪼금만 기다리시소, 지가 자리 만들어 드릴깨예. 우째 이리 오랜만에 오십니꺼!”
 “바빠서 그리 됐습니더, 오랜만에 본깨 아지매 얼굴이 더 좋아졌습니더!”

 나는 여자와 명교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명교수가 한 눈을 찡긋했다. 여자가 포장마차 밖으로 덜컹거리는 간이식탁 하나를 밀어놓고 엉덩이만 얹는 동그란 의자 두 개를 놓아주었다.
 “이리 앉으시소! 맨날 혼자 오시더니 오늘은 우째 탤런터 겉은 꽃미남을 데리오싯네예!”

 “꽃미남? 정말 그럴듯한 표현이시네! 내 동생이니까 다음에 혼자 오더라도 잘해 주이소.”
 “동생이라는 거는 쌩짜배이 거짓말이다, 오데 닮은 데가 있어야제, 환재이 아저씨는 개구재이 장난꾸러기 맨키로 생기고, 이 꽃미남은 양반집 되련님 맨키로 고상하게 생●는 걸.”

 “씨는 같은데 배가 달라서 그렇소마. 어서 내 좋아하는 거 다 주이소마.”
 닭꼬치 구이 홍합국 쭈꾸미 양념구이와 소주 두 병이 금방 덜컹거리는 간이식탁 위에 채워졌다.

 “맛있게 드시소, 밖이 포장 안보다 씨원하고 조용합니더. 행님은 이렇키 밖에서 잡숫는 거를 좋아해예!”
 여자가 나를 보고 생긋 웃어주고는 포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명교수를 바라보았다.
 “아니 교수님 어떻게 환쟁이로 둔갑하셨습니까?”
 나는 소주병의 뚜껑을 따고 그의 앞에 놓여진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그를 건너다 보았다.

 “의사보다 환쟁이가 편해서요. 내가 작년인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화가인 자기 오빠를 닮았다고 반겨 하길래 나도 환쟁이라고 대답해 주었더니 그때부터 내 이름이 ‘환재이 아자씨’가 됐어요. 참말인줄 아는지 거짓말인줄 알면서 그렇게 불러주는 것인지 아무튼 아주 편해요. 술은 한병씩 각자 자기 주량대로 따라 마십시다. 이 쭈꾸미 양념구이 먹어봐요, 얼큰하면서 맛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