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늪 509

 이날 밤,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뒤척임에 채형이 잠들지 못할까봐 그야말로 잠들은 척 숨을 죽이다가 그녀의 호흡이 고르게 뿜어지면서 눈을 떴다. 서른 살도 채 안된, 발뒤꿈치 들어 사방을 둘러 보아도 불알 두쪽 찬 것 외에 가진 것 없는 공찬우에게 떨어진 이 횡재를, 어떻게 감당하고 다스려야 할 것인지 불안감 또한 없지 않았다.

 S대학병원 비뇨기과 K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 행림(杏林)계 명문가의 사위이자 J건설업체의 외손 사위가 되었는데, 어른들이 전문지 기자 노릇이나 하게 내버려 둘 것 같지 않다고 하더니 첫 번째 조짐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장차 내 운명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나 생명의 격렬한 몸부림과 가장 원천적이고 인간적인 냄새가 팥죽처럼 끓는, 따라서 삶의 의욕을 자극받는 병원가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거실의 괘종이 새벽 세시를 쳤다. 나는 제반사의 잡념을 접고 서서히 안정되는 마음으로 두 눈을 지그시 힘주어 감았다.
 다음 날, 1시간여 늦잠을 잤다. 괘종이 석 점을 치는 것을 아슴아슴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었으니 늦잠을 잤어도 네 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했을 뿐이었다.

 “찬우씨, 일어나요. 정기사가 차 대령시켰다는데요.”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용수철에 튕기듯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가 휭 둘리면서 아찔한 현기증이 왔다. 너무 급하게 몸을 움직였기 때문인 듯 했다.
 “뭐라고 했지? 정기사가 이 시간에 왜요?”

 “공이사님 뫼시러 왔다는데요?”
 채형이 상글상글 웃으면서 나를 쳐다 보았다.
 “채형씨까지 왜 이래요, 이 시간에 장모님 출근시켜 드리지 않고, 왜 나를 부른답니까-.”

 “엄만 호텔 조찬회에 참석키 위해 새벽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셨대요! 외국의 건설 관계 바이어들이 제주호텔에 투숙한 모양인데 외할아버지의 지시로 엄마가 그들을 초청했다나 봐요. 나는 조찬회가 내일인줄 알고 있었는데…병원 총무과장 겸 원장님 비서실장인 내 목이 달아나게 되었네.”

 그녀는 날짜를 잘못 알고 장모에게 지난 밤에 미리 인사를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죄송하게 되었으면 당장 전화드려요. 정기사는 장모님을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는 겁니까?”
 “그럼요. 어서 준비하시고 인삼주스에 샌드위치 만들어 놓았으니 드시라구요. 지난 밤에 늦게 저녁식사를 해서 아침에는 간단히 차렸어요.”

 “전혀 밥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나는 대중교통 이용할 테니까 정기사는 당신 일 보라고 하세요.”
 “아니, 왜 그러세요 도대체…진짜 우리가 이용하지 않으면 정기사 밥줄 끊어질 수도 있어요.”

 “내가 그 고급차를 타고 신문사로 나가면 경비실의 직원들 공연히 비위 상케하고, 나 구설수에 오른다는 거 몰라서 그래요?”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아서 침대 아래로 내려서며 콧속을 실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