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해서 그렇습니다….”
찬수의 말이 꺽쉬어졌다. 고개를 꺾는가 싶더니 후두둑 눈물을 떨구었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녀석의 초라한 몰골이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보자마자 두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비죽여지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왜 그러냐니까?”
“모르겠습니다. 형님 보니까… 눈물이 납니다….”
“군인답지 않게… 울음 그쳐―.”
나는 찬수가 혼자라는 생각을 새삼 했다. 찬수에게 목을 매달던 그의 엄마도 그 여자의 사내도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은 아버지를 통해 들었었다.
해장국 두 그릇과 수육 한 쟁반을 주문했다. 오전 녘이었지만 소주도 한 병 시켰다.
“형…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줘요….”
찬수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예전의 호칭대로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이제, 철들었냐? 네가 잘못한 것 알았으면 됐다. 식당은 임대 주었다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니?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계약서와 등기권리증을 아버지께 맡기고 입대했어요. 제대하면 식당은 제가 직접 할 겁니다”
음식이 왔다. 찬수는 게걸스럴 만큼 허겁지겁 먹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수육을 한 젓가락에 서너 점씩 너댓 번 오가는 사이에 빈 접시만 남았다.
“천천히 먹어. 마치 굶다 나온 사람 같다. 먹을 수 있으면 이것도 마저 먹으렴.”
나는 찬수와 함께 먹어주느라 숟가락만 걸쳐 두었던 내 몫의 해장국을 그 앞으로 밀어주었다.
“됐어요. 아 이것은 소주 안주해야 되겠네!”
찬수는 미처 뚜껑도 따지 않았던 소주병을 끌어당기더니 하얀 엽차 잔에 쿨쿨 따랐다.
“천천히 조금씩 마셔라, 무슨 일 났다고 오전 녘부터 한 병 다 마실 생각은 말고.”
“다 마시고 싶어요. 친구부모 면회 오면 덩달아 친구에게 빌붙어서 외출해야 술을 얻어먹는데, 많이 굶었어요.”
“갑자기 대낮부터 마시면 술 오른다. 적당히 마셔라. 군대 생활이 힘드냐?”
“견딜만해요. 하지만 좀 못된 고참들이 있어 수시로 괴롭혀요….”
“무슨 일로?”
“지 놈들 기분 이지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구나. 네가 그 놈들 타깃이 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새삼 군 복무 시절 고참들에게 대학 재학 중인 '먹물'든 신병인 탓에 돌림을 당할 뻔 했던 것을 떠올렸다.
“형님은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뭘 모른단 말이냐?”
“종교나, 성적 취향의… 변태 같은 새끼들이 있어서…, 말씀드리기가 뭐 하네요.”
생명의 늪 (534)
입력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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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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