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 286 >
2. 언덕의 집③

"아버지가 양식 팔아 오실 거 아녀유?"
"아버지 언제 오실 줄 알구. 그렇다고 굶고 앉아 있을 수야 없잖어."
"알었시유."
저녁 때였다. 칠복이가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마루로 나왔다.
시퍼런 보릿단을 베어다 놓고 보리 목을 따던 새어머니와 두 형이 칠복이 쪽을 쳐다보았다.
소쿠리에는 보리목이 수북히 담겨 있었다.
"이제 좀 갱신 할만 하늬?"
두 형은 힐끗 쳐다보고 나서 보리 목을 따는 일에 열중이고, 새어머니가 이쪽을 보며 인정스럽게 웃었다.
밝은 햇살 아래 흰 이가 곱게 느껴졌다. 꼭 엄마도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칠복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칠복이는 비로소 새로 살게 된 곳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멀리 덩어리 큰 가파른 산이 있고, 그 산 아래로 신작로가 실띠를 두른 듯이 지나가고, 아래로는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건넜던 개울과 흰모래와 자갈밭이 보였다.
그리고 개울 이 쪽으로 다시 좁은 밭들이 보이고,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이 한 부채 속에 들어 있었다.
두 형과 어머니가 하는 일은 척척 손발이 맞았다.
보리 목을 따는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한 형이 먼저 일어나 가마솥에 솔가지를 담그고 그 위에 싸리 채반을 깔고, 고래에 불을 넣었다.
그 동안 보리 목 따는 일이 끝나자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고 형은 보리 목이 담긴 소쿠리를 들고 가마솥으로 가져다 솥에 쏟더니 물을 길어다 붓고 솥뚜껑을 덮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 말 한마디도 없었다.
얼마 아니되어 지게 뿔이 훌쩍 넘도록 큰 나뭇지게 두 짐이 들어왔다. 형 하나가 바지랑대로 마당을 가로질러 있는 빨랫줄을 치켜올려 주었고, 마당에 나무를 부리고 그 위로 또 한 지게를 덧 얹었다.
형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부엌 쪽 나무간으로 한 다발씩 안아 들이니 금방 일이 끝났다.
지게꼬리를 사리던 형 하나가 마루에 기대어 앉은 칠복이를 다정하게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제, 운신을 하는구먼…"
새어머니가 부엌에서 점심상을 내어왔다. 점심상이라야 수저에 동치미가 상 가운데 놓여있고 김치 한 사발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고구마 한 소쿠리가 나와서 그게 점심인 줄을 알았다. 둘러앉아 고구마를 먹는데, 칠복이를 상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어 새어머니가 개다리소반에 밥과 김치가 놓인 상을 들고 나왔다.
그 동안 칠복이에게만 주던 밥이었구나 싶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형들이 고구마를 먹고 한꺼번에 일어나 흩어졌는데, 고구마 껍질하나 김치국물 한방울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날 밤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나물 죽을 끓여서 먹었는데, 그 끝에 형제들이 모여 두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날이 어두워지자 먼 개울 쪽에서 '아버지 오시오!'하는 장마중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밤중에 들려오는 장마중 소리는 꼭 비오는 날 제 어미를 찾아 운다는 구렁이 울음처럼 처량하게 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