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 289 >
2. 언덕의 집⑥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칠복이를 구령대에 불러 세워 인사를 시켰다.
그제야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사 준 교복을 여러 아이들 앞에 자랑하게 된 것이다.
칠복이가 구령대에 내려다보니 전교생 중에 칠복이처럼 검정 교복을 입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할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날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점심을 굶어서 배는 고픈데 형들이 여전히 보리 방아를 찧고 있어서 아버지가 양식을 팔아오지 않아서 또 죽을 먹어야 하는 줄 알았다.
마루에는 아침에 떠메어 들어온 아버지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아부지. 잘 댕겨 오셨시유?"
칠복이는 얼른 인사말이 생각나지 않았으나 어제 장에서 돌아온 인사를 못했으니 그렇게 했다.
"이놈아. 머리통은 괜찮냐?"
"예."
아버지는 멋쩍게 웃더니 온 식구더러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아따, 어젯밤 도깨비. 어찌나 독한 놈을 만났던지 죽다 살었다."
술을 너무 마셔서 인사불성이 되었어도 염치가 없어서인지 말은 다르게 했다.
아버지는 좀 무안했던지 주눅이 들어 서 있는 형들을 향해 말했다.
"이놈들아. 애비가 안 오면 무슨 일이 있으려니 하고 멀리 나와 봐야 할 거 아녀? 애비가 도깨비에 홀려서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구 소랭이만 지르고 있으믄 장땡이여?"
머리를 처박고 있던 일복이형이 울상을 지어 말했다.
"아부지, 이담부터는 꼭 그렇게 할 거구먼이유."
"아구구!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어디 성한 데가 없으니, 원."
아버지가 엉구럭을 떨며 몸 여기저기를 틀며 누우려하자 형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부축을 했다.
"아버지 그만 방으로 모실까유?"
"오냐, 그래라. 아구구, 이놈들아. 애비 죽는다 살살 들어라."
아버지는 방으로 떠메어져 들어가며 연신 신음을 내었다.
저녁때가 되어 칠복이 형들을 따라 다래끼를 들고 보리 목을 따러 보리밭으로 갔다.
보리 목을 따 담던 오복이형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어머이, 나 내일 영동으로 붓글씨 쓰기 시합에 나가유."
"뭐? 그럼, 왜 이제 말하는 거냐? 옷도 빨아 입구 가야하는데."
"까짓 삼베옷 빨아 입어야 따굽기만 하지 뭐유."
슬쩍 오복이형의 눈이 교복을 입은 칠복이를 향했다. 칠복이가 냉큼 말했다.
"형, 그럼 내 옷 입구 가. 소매 안 걷으면 꼭 맞을 껴."
오복이형의 입이 금새 찢어졌다.
"그럼, 넌 뭘 입구?"
"형 옷 입으믄 되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