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 372 >
9. 끝없는 욕망 속으로

대학병원 영안실로 들어서자 '현이복 喪家' 글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늘빛이 노랗게 물들었다.
가끔은, 모래언덕 아지랑이 속이 이렇게 보이기도 했었다. 그 때마다 칠복이는 아득한 절망의 세상을 떠날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칠복이 왔냐?"
훤히 넓은 영안실에 형광등조차 흐릿한데, 어머니와 형제들이 넋 놓고 앉아 앉았다가 일어났다.
"이복이형! 으흐흐…"
그만 울음이 터졌다. 칠복이가 한바탕 울음을 터트렸을 때, 어머니가 다시 한번 '아이고! 아이고!' 소리 내어 울었고, 형제들이 함께 흐느껴 울었다.
술기운으로 코가 벌건 아저씨가 관 뚜껑에 마지막으로 못질을 하기 전에 돌아보면서 '마지막으로 얼굴 볼 사람이 있느냐?'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일복이형이 얼른 나서서 고개를 저었다.
'탕 탕' 못이 박혔다. 그러나 칠복이는 이복이형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일복이형은 못 본 척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 이유는 뒤에야 알았다.
이복이형의 관을 실은 텅 빈 영구차가 영안실을 나와 병원 뒷문을 빠져나왔을 때는 마치 죽은
영혼을 마중 나온 것처럼 서녘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머니나 형제들은 벌써 이복이형의 죽음에 대해 감정이 정리된 것 같았다.
그래도 칠복이는 지난 날 고생하던 이복이형 생각에 연신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것도 모르고 그토록 고생하며 살았나 싶어 가슴이 아팠다.
일복이형이 칠복이에게 최소한으로 알려야할 말을 드문드문 말했다.
"고향 밭 한 모퉁이다 가족 미(묘)를 써도 좋겠지만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까봐 화장시키기루 했다. 마침 지금 오면 화장터에서 받아 준다카더라."
이 말 끝에 일복이형은 한동안 말을 그쳤다가 영구차가 시가지를 벗어날 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병원에 가서 본께, 끔찍해서 못 보겠더라."
이 말은 칠복이에게 관 뚜껑을 열어 보이지 않은 이유가 되었는데, 일복이형이 갑자기 금방 제가 한 말에 분노가 치밀어 말했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이복이 돈을 가져간 모양이다. 이것저것 속상한 김에 운전을 하다가 사고났으니, 이복이는 아부지가 죽인 거다."
이때 곁에 앉아 있던 형수가 어머니와 일복이형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었다. 시집올 때 약속대로 아직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사는 형수였다.
그러나 일복이형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영구차가 어두운 산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차가 늦게 도착하여 영결식이라고 북어 한 마리에 소주 한 병 올려놓고 건성으로 했다. 그래도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술 한잔씩 올렸는데, 어머니는 아예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술상이 치워지고 관이 올려진 수레가 두어 뼘 뒤 화덕으로 밀려들어가더니 금방 불길에 휩싸였다. 그나마도 잠깐 동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