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 385 >
10. 선택 ⑬
옷을 입는 동안 복잡한 감정들이 아프게 잦아들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 이래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들었다.
노혜미가 새우처럼 구부렸던 몸을 폈고, 뜻밖에 평화로운 얼굴이 햇살처럼 퍼져 있었다.
왜인지 딱한 맘이 와락 일면서 갑자기 팔려간 유복이누나 생각이 밀려왔다.
"아침 바다 보러갈까?"
팔려갔다가 돌아온 유복이누나에게 말을 걸 듯, 연민의 정에 휩싸여 물었다.
"나 좀 더 잘래."
"알았어."
칠복이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새벽 기운이 달려들었다. 칠복이가 마당으로 내려선 순간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마치 돌로 굳어버린 사람처럼 어젯밤 그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할머니 일찍 일어나셨군요."
어젯밤의 성희(性戱)를 고스란히 보여준 것 같은 수치심이 들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다.
집을 나서니 안개 낀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잔 바람도 없이, 마치 밀려드는 안개 소리가 들릴 만큼 정밀한 새벽 정적에 잠겨 있었다.
소나무 숲에서 짙은 솔 향이 갯내음에 섞여 끼쳐들었다. 아직 푸른 어둠에 잠긴 안개 낀 바다 쪽에서 비로소 물결소리가 달려들었다.
칠복이는 자신을 미지의 세계로 던지듯 안개 속을 걸었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갯벌로 내려섰다. 그제야 칠복이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떠올랐다.
이제 김서창과 상의하여 자취방의 짐을 정리해야겠다. 병무청으로 들어가 입대원을 내고 학교에 휴학계를 낸다. 그리고 시골로 내려가는 일이다.
어쩌면 시골은 들리지 않고 입대를 하고 편지를 띄워도 좋을 것만 같았다. 비로소 끝 모를 슬픔이 일었다.
칠복이가 집으로 돌아오니 노혜미가 할머니를 거들어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풍겨 나왔다.
"빨랑 씻어요. 아침 얼마나 맛나게 지었다구요."
노혜미가 국자로 국을 퍼서 훌훌 불어 맛을 보면서 말했다. 할머니가 쓰던 앞치마를 두른 노혜미의 모습이 꼭 남편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 같았다.
그렇지만 노혜미의 명랑한 모습이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꿀을 빼먹은 벌이 다시 그 꽃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심정인가.
"어울려 보여."
"안 그래도 할머니가 저를 수양딸로 삼고 싶으시대요."
아까까지만해도 돌처럼 굳어있던 할머니의 얼굴에 해사한 웃음기를 피워 올려놓은 것은 온전히 노혜미의 붙임성 때문이다.
"서울 가는 기차가 열 시에 있데요. 그 시간에 맞춰서 기사님이 차를 갖다 댄다고 했어요."
그러나 칠복이는 노혜미가 내 아내가 될 수 없다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것은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이제부터 칠복이는 노혜미와의 추억을 지워나가야 한다.
별이 쏟아지는 사랑
입력 199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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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7-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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