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 425 >
13. 처녀 아줌마⑥

나른한 오후의 청명한 가을 햇살이 마당 그득히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부엌에서 경쾌한 도마질 소리와 닭을 요리하는 냄새가 한동안 코를 자극하더니 한참 뜸이 든 뒤에 음식상이 나왔다.
"아이고, 찬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설퍼서 어떻게 드실란가 모르겠네요."
여자는 상을 들여놓으면서 괜한 겸양을 떨었다.
"아니에요. 이만하면 푸짐한 걸이요."
우선 냄새부터 도회지의 집에서 맛보던 음식과 달랐다. 여자가 물러가려다 말고 잠깐 쭈뼛거리다가 말했다.
"저… 저번 추석 명절 때 집에서 술을 쪼금 담아놓은 게 있는데 약주 한잔씩 하실까요? 지가 술값은 안 받을 거구먼이요."
냉큼냉큼 대답을 잘하던 허사장이 이번에는 귀녀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햇살이 따가운 낮이니 술이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중대한 거래를 눈앞에 앞두고 있지 않은가.
"저는 괜찮은데 사장님 한잔하세요. 까짓 일도 잘 되었는데 마음놓고 한잔하시지요, 뭐."
"그럴까요?"
큰 기쁨에 비해 허사장의 목소리는 낮았다. 여자가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마치 준비라도 해 둔 듯이 술병과 잔을 가지고 왔다. 여자가 술병을 조심스럽게 밀어놓으며 말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저번 추석 명절 때 제사에 쓸라고 쪼매 담은 술인데, 설마 밀주 신고는 하시지 않을 테지요?"
"아따 세상에 잘 얻어먹고 그런 짓을 할 후레아들 놈이 어디 있단 말이요? 하하하."
허사장이 술병을 들어 귀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이어 운전하는 미스터박에게 내밀었으나 운전 때문에 사양을 하여 귀녀가 술을 따라 주었다.
술이 따라지는 동안 허사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나다를까 허사장은 잔을 받자마자 단숨에 들이켜더니 빈 잔을 내려놓으며 닭고기 한 토막을 집어다 뜯어먹으며 연신 감탄하여 말했다.
"햐! 술맛에 안주까지, 사람 죽인다!"
닭고기를 탐욕스럽게 뜯는 허사장을 보자 귀녀는 그게 꼭 아버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처량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새로이 부르게 된 어머니가 그래도 귀녀를 딱하게 여겨서 생일을 챙겨 주었다. 칠월 칠석 다음날이니 마침 장마가 가시고 누렇던 앞냇물의 물빛이 푸르게 변해가던 날이었다.
그 날도 소장을 보러간 아버지의 장마중을 나갔는데, 귀녀는 설레고 있었다. 다음날이 귀녀의 생일이었고, 아버지에게 '미역 한 타래'를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술이 잔뜩 취해 돌아온 아버지는 미역을 깜빡 잊었다고 하면서 다음 장날엔 꼭 사온다는 것이다.
귀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귀녀의 눈에서 그만 눈물이 툭 굴러 떨어졌다.
"이 년아. 왜 질질 짜고 지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