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482>
 17. 아버지를 위하여 ⑧

 한동안 머리를 떨구고 앉아 있던 일복이형이 머리를 들었는데, 눈에는 눈물이 흥건했다.
 일복이형이 소의 눈처럼 순하게 끔벅이며 말했다.
 "칠복아. 너, 정말 그래도 되겄냐? 그러면 우리 이렇게 하자. 지금 암소 저 놈을 판 셈치고 뱃속에 든 송아지를 낳아 기르면 너 제대할 때꺼정 큰 소 서너 마리는 늘릴 수 있다. 그럼 니 월사금 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꺼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는 칠복이도 어쩌면 저렇게 비참한 죽음으로 발전해 갈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쓸고 내려갔다.
그래, 죽음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자. 문득, 유언장을 쓴 주인이 무섭게 느껴졌다.
 "야! 이 빙신 새끼야!"
 칠복이가 행정실로 들어갔을 때, 유서를 본 선임하사는 대뜸 욕부터 내질렀다.
 "이런 걸 인제 가지고 오면 우짜노? 너 누구 꼬질대 나가는 꼴 볼라꼬 환장했노?"
 그리고 인사기록 카드에 씌어진 필체와 대조를 시켜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맞다! 이거 뒈진 놈 필체와 똑 같으지? 그지?"
 인사계는 대뜸 긴장을 벗어 던지며 앞에 있는 하사들을 향해 물었다. 질문을 받은 하사들은 아니어도 아니랄 수 없는 기세라, '예 그렇습니다!' 하고 군기가 든 말로 대답했다.
인사계는 건성으로나마 확인 절차가 끝나자 확신이 선 듯 제 손으로 전화기를 돌려대었다. 금방이라도 전화기에서 퍼런 불꽃이 튈 것 같았다.
 "멸공! 저 인사곕니더. 필적이 똑같은 유서가 나왔심더. 자살이 분명합니더! 예, 알겠심더!"
 전화를 거는 동안 차츰 긴장해가던 인사계가 내처 긴장되어 인사기록 카드와 유서를 급히 챙겨들고 나가며 말했다.
 "야, 김하사! 야한테 입수한 경위를 조서 식으로 받아 놓그래이."
 다음날, 덮인 눈 위로 덧 눈이 푸짐하게 날리었다. 칠복이는 고속버스에 올라 보충대 연병장을 떠났다.
그러나 고속버스 여행은 잠깐이고, 따블백을 메고 내리자 칼바람이 몰아쳤고, 호로가 씌워진 M602 트럭에 실려 하염없이 들어갔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최전방으로 들어가는 게 틀림없었다. 그 때 칠복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이제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생활하는 동안 아버지에 대한 원망 따위는 깨끗이 지워나가는 일이다.
 그렇지만 칠복이가 제대를 하고 나왔을 때, 소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 동안 아버지가 또 팔아먹었던 것이다.
 "칠복씨! 우리도 눈 맞으러 나가요."
 맥주 몇 잔에 얼굴이 발그레진 오문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눈 많은 고을 아가씨가 눈에 들뜨다니 어울리지 않아요."
 "오래 가슴에 담아 두었던 사람과 맞는 눈은 아마 꿈 같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