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아버지를 찾아서< 511 >
20. 아이엠 에프(IMF) ⑥
“미스 천, 이걸로 오늘 회식비 계산해요.”
칠복이는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칠복이를 향하는데, 왜인지 서글퍼 보였다.
어차피 누구를 잘라내느냐 하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칠복이였다.
칠복이가 밖으로 나오자 해방감 같은 것이 엄습해왔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상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다가 비로소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내뿜는 듯한 통쾌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근심의 짐을 부려놓고 나왔으니 어찌 그 기분이 오래 지속 될 수 있겠는가. 싸늘한 바깥 기운에 익숙해지자 다시 회식 집의 침묵―처절한 절망이 자리를 잡았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 너머에 배어있던 깊은 절망의 그늘이 느껴졌다.
칠복이는 택시를 타려다 마침 지하철역이 보여서 몸을 피하듯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철 안에서 악취 섞인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사람들의 자취가 보이지 않아서 마치 딴 세상에 들어와 있나 싶은 착각이 들 즈음 앞에서 몇 사람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안정된 처지에서는 저들의 어두운 표정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순간 칠복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공중 전화 부스 곁에 몸 안으로 목을 잔뜩 웅크려 박은 사내가 눈에 띄었는데, 그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내 처지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휘청거렸다.
칠복이가 호텔 로비로 들어섰을 때, 대형 유리에 비친 위축된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과 함께 귀녀에게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오기가 일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오셨습니까?”
카운터에서 붉은 제복의 청년이 민망할 만큼 납죽이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투숙한 사람을 찾아 왔는데요.”
“이쪽입니다.”
청년이 다 허리를 접어 몇 발자국 앞에 있는 안내대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상냥한 아가씨가 일어나 맞았다.
“아, 현귀녀씨를 만나러 오신 모양이군요?”
아가씨가 앞에서 주고받는 말을 듣고 눈치 빠르게 대응했다.
“오빠!”
호텔 방으로 들어서자 귀녀가 팬티 브레지어 차림으로 서 있다가 칠복이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여태 소식도 없다가 웬일이냐?”
칠복이는 미처 방어할 틈도 없이 귀녀의 품에서 어색하게 물었다. 귀녀는 안 그래도 곰살맞은데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니 이런 인사법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오빠, 그 동안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귀녀는 아직 날씬한 몸을 지니고 있었고,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별이 쏟아지는 사랑
입력 199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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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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