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 612 >
3. 또 다른 만남 ⑦
술과 안주가 네 아가씨들에 의해 급히 줄어들었다. 김대홍은 돈 없던 대학시절이 떠올라 좀은 쓸쓸하게 여겨졌다.
대개 일차 모임은 우동이나 짬뽕을 먹었고, 그 그릇에 막걸리를 마셨다. 술기운이 올라 고고 클럽까지 가서 놀고 흩어질 때면 소위 끼 있는 여학생들은 몇몇이 어울려 호텔 나이트 클럽으로 몰려가곤 했다.
여기서 나이 들고 돈 있는 '꼰대'를 물어 실컷 즐긴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학생들에게 심한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는데, 어쩌면 지금 등뒤에는 젊은이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나가요!”
마침 천둥 같은 밴드소리와 함께 광란하는 빛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뭐라 거절할 틈도 없이 두 아가씨가 김대홍의 양 겨드랑이를 앙증맞게 차고 일어섰다. 사정은 이중산의 그 큰 덩치도 마찬가지였다.
번쩍거리는 불빛 아래,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군상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발랄한 아가씨 둘이 김대홍 앞에서 앙증맞게, 때로는 요염한 몸짓으로 어른대었다. 김대홍도 천천히 두 아가씨의 몸짓을 어색하게 흉내내었다.
두 아가씨가 서로 차지하겠다는 듯이 김대홍에게 바짝 다가왔다. 이중산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아까 횟집에서 만났던 여자들과는 다른 흥이 있었다. 김대홍은 그래도 흥이 살아났다.
불쑥 불쑥 다가서는 불안감만 아니라면, 또 가끔씩 아프게 다가서는 실직의 아픔만 아니라면 흠뻑 취하고 싶은 밤이었다.
어쩌면 이런 즐거움이야말로 김대홍이 모르고 있던 환상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윽고 소나기 같은 음악이 멎고 조용한 블루스 음악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두 아가씨가 서로 김대홍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그 모습이 앙증맞게 보였다. 옆에 이중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생머리 아가씨가 김대홍의 허리를 차지했다.
무대는 잔잔한 호수고, 스테이지의 어둠 속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젊고 싱싱한 젖가슴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김대홍은 조금은 떨리는 가슴으로 생머리 아가씨를 힘주어 안아 들이며 천천히 스텝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 쪽에서는 좀은 힘이 느껴지면서 야릇한 쾌감을 동반했다. 이는 마치 여울물에서 힘찬 물고기를 낚아 올릴 때 느끼는 쾌감과 같은 것이었다.
“어머! 아저씨. 떠시는 거 같아요.”
마치 생머리 아가씨가 김대홍의 뛰는 가슴을 느꼈던지 심술궂게 말했다.
“그러면 늙은 총각 가슴에 이런 미녀가 들어왔는데 떨지 않을 수 있나?”
“정말 뜻밖이다. 아저씨, 정말 총각이세요?”
생머리 아가씨가 김대홍의 귀에 대고 말이 아닌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이엠에프 때문에 잃었습니다.”
취기에 의지하긴 했지만, 김대홍은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머, 딱하시다. 제가 오늘밤에 외로움을 덜어드릴께요.”
아가씨가 가슴에 묻었던 머리를 쳐들었다. 눈 속에는 한 점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별이 쏟아지는 사랑
입력 2000-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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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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