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 619 >
3. 또 다른 만남 ⑭

"믿지 않으셔도 어쩔 수 없지만, 친구를 따라 몇 번 술좌석에 앉아는 봤어요. 하지만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정말 처음이에요."
김대홍은 갑자기 까닭 모를 거부감 같은 것이 일어나면서 거침없이 타오르던 불길이 잡히며 천천히 알몸을 쓸었다. 몸은 부드러웠고 탐스러웠다.
여대생으로 차림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 같기도 했다. 인생의 쓴맛을 너무 일찍 접했구나 싶으니 좀은 딱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어려움을 인내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철딱서니 없는 세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하룻밤 스쳐갈 여자에게 김대홍은 너무 많은 감정으로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아무튼, 김대홍은 함대령이 인기 있는 악단 지휘자라는 것과, 이중산은 함대령의 인기를 이용해 뭔가 일을 벌이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김대홍이 이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불확실하지만 취직이라는 것도 한 셈이다.
김대홍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생머리의 몸에서는 솜털이 돋아나듯이 싱싱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여린 털이 눕고 그 자리에 싱싱한 비늘이 돋아나면서 신음이 잦아졌다.
두 사람은 차츰 갈증을 느꼈고, 서로의 육체에서 목을 축였다. 김대홍은 차츰 가쁘게 터져 나오는 신음을 틀어막으면서 깊은 샘물을 들이켜듯 혀를 빨아들였다.
그녀의 온몸이 빨려 들어왔고, 김대홍은 희열에 부풀어 가고 있었다. 김대홍이 몸밖으로 거친 숨을 내몰아 쉬자 이번에는 그녀가 김대홍의 몸을 빨아들였다.
"아아!"
그녀가 몸을 뒤틀면서 신음을 토해 내었다. 거친 바람이 온 세상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나무들이 거칠게 뒤채고 풀이 바람 앞에 누웠다.
두 사람은 그 바람 속에서 한 몸이 되어 불타올랐다.
마침내 회오리치던 바람이 잤다. 뒤채던 나무들과 누웠던 풀들이 고요를 되찾았다.
"남녀가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생머리가 활짝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거친 폭풍우 끝에 낙숫물이 듣듯이, 미열에 들떠 말했다.
몸에는 아직 싱싱한 비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면,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데 지금 뭐가 장애인가?"
김대홍이 물었지만 이는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이제 김대홍은 위장 이혼에 저항해야 하는 기나긴 투쟁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큰 장애는 이렇게 스스로가 흔들리는 일이다.
"솔직히 이제 결혼은 정나미가 떨어져 싫어요."
"그렇지만 혼자 살기에는 너무 젊지 않은가?"
김대홍은 생머리의 목을 안고 귓볼을 쓸었는데 눈물에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