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 650 >
 5. 행복의 샘을 찾아서 ⑭

 “오늘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간단히 먹어야 해. 이 집에서 맛나게 하는 거 좀 추천해 봐.”
 이중산은 아가씨가 분명히 만지기 좋게 가까이 앉았지만 오늘은 냉정했다. 저렇게 발랄한 아가씨 행세를 하고 있어도 어쩌면 유옥희같은 유부녀인지도 모른다.
 “대구탕 드세요. 우리 집 주방장님께서 대구탕 하나는 끝내줘요.”
 아가씨의 얼굴에 웃음기가 냉정하게 사라지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아가씨 말대로 하자구. 그리구 여기 소주 먼저 한 병 가져오구……”
 “알았어요.”
 아가씨가 휑하니 돌아서며 말했다. 그래도 이중산은 사람 좋이 웃으며 아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중산이 딱하게 보였다.
 “저것이 끝내준다는 말이 뭔 뜻인 줄이나 알고 지껄이는지 모르겄네. 하기야 이런데 굴러 댕기는 처녀야 알 것 다 알게 되겄지만.”
 이중산이 큰 몸을 흔들며 웃었지만 멋쩍어 보였다. 이중산이 불쑥 물었다.
 “그나저나, 요즘도 유옥희씨 만납니까?”
 이때 김대홍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유옥희를 만나는 일이야 단 둘만의 비밀로만 알았던 것이다. 이중산이 어떻게 안 걸까.
김대홍은 낯이 붉어졌지만 슬그머니 웃음을 띄우고 말았다. 그러나 이중산은 김대홍의 약점을 놓치지 않았다.
 “잘 데리구 노시우. 괜스레 재수 없으면 진드기 붙고 망신 당하니께요.”
 이중산이 유옥희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마치 내가 맘먹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면, 유옥희가 이중산에게 끈이 이어져 있단 말인가. 아니다. 유옥희는 순진한 내 여자다.
어쩌면 이중산이 넘겨짚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김대홍이 배꼽 아래 일은 간섭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이사장님이 저의 아래도리 일을 어떻게 아십니까?”
 “알기는요. 그저 한번 해본 말이지요.”
 도리어 이중산의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이 말 끝에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 틈에 밑반찬과 소주가 먼저 들어왔다.
김대홍이 얼른 술병을 들어 이중산의 잔에 따랐다. 이번에는 이중산이 김대홍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김실장님은 이따가 함사장님을 만나 약주를 드실 테니 식사나 하시지요.”
 이중산의 말에는 어딘가 질투가 배어 있었다. 이중산이 술잔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솔직히, 이번 무속협회 건물 공사를 맡아야 제 형편이 좀 펴는데, 김 실장님이 한번 도와주시오.”
 김대홍의 등으로 서늘한 기운이 쓸려 내려갔다. 어쩌면 이중산의 수작에 걸려든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