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 660 >
 6. 보이지 않는 손 ⑥

 “서사장에게 부탁한 것이 거절당했는데 거기에 더 필요한 게 뭐 있겠나?”
 “선배님께서 저를 그렇게 아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한없이 기쁩니다.”
 “알았네. 나더러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젊은 놈들 춤판에 장단이나 맞춰 주라는 말이군. 좀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밴드를 두들기다가 꼬꾸라지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는군.”
 “그나저나 사장님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얼른 뭔가 매듭이 지어져야할 텐데요.”
 어려운 일이라니, 김대홍은 내심 놀랐다. 그러면 현금 동원력이라는 것도 거품인지도 모른다. 함대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려운 일은 무슨 어려운 일. 사람은 어려운 때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참에 큰 사업 하나 벌여볼 참이네.”
 “저도 들었습니다. 잘 되셔야될 텐데요.”
 “여기 유능한 사람을 맞아들였으니 잘 될 거야.”
 그제야 김대홍은 '어려운 일'이란 나이트클럽을 비워야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밖으로 나오니 불꺼진 풍차가 누를 듯 무겁게 서 있고, 어둠이 한층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아까 현관문 쪽에 붙어 섰던 어둠 덩어리가 생각났으나 별 것 아니려니 하여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상하게 머리 속은 맑게 개어 있었고, 그 자리에 환한 유옥희가 자리 잡았다. 오늘밤에는 꼭 만나야할 것 같았다.
 서창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푸른 수은 등불이 곱게 피어 있었다. 차가 등불 아래를 달릴 때 함대령이 운전사에게 말했다.
 “김실장님을 먼저 모셔다 드리게.”
 “아닙니다. 저는 강남 사무실 부근에서 내려주십시오. 마침 볼일 도 좀 있습니다.”
 이는 유옥희를 만난다는 말로 들을까봐 얼른 말을 바꾸었다.
 “실은 아까 사우나에서 지갑을 놓고 왔는데 마침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찾아서 들어가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도 궁색한 말이 되고 말았다.
 “지갑이 발 달려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들어가시구려.”
 “아닙니다. 사장님.”
 운전사가 잠깐 함사장 쪽 눈치를 살피었다.
 “불편해 하시는데 내려 드리게.”
 “그러면 아까 사우나 앞에서 내려 드리겠습니다.”
 “그러실 것 없이 도로에 세워 주세요.”
 아무래도 사우나는 불이 꺼져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별 것 아닌 거짓말로 어색해질 것 같아서였다.
 차에서 내려 함대령에게 인사를 하고 몇 걸음 옮겼을 때였다.
 “잠깐 봅시다.”
 등뒤에서 무슨 말소리가 있다 싶더니 섬광처럼 스쳐 가는 것이 아까 현관 앞에 어른거리던 검은 그림자였다.
이도 잠깐, 머리에 뭔가 둔중한 것이 쿵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