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10. 도망자 ⑤
눈 내리던 계절에 떠났다가 겨우 여름 초입에 돌아왔으니 겨우 몇 달 동안 직업을 가진 셈이다. 그나마 지금은 도망자의 처지가 아닌가.
순간, 김대홍의 눈길은 바깥 사내의 눈빛이 번뜩이던 방쪽으로 향했는데 오늘따라 바깥사내의 눈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바깥주인은 취직이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괜한 질투와 함께 소외감이 느껴졌다.
“그 동안 사업은 잘 되었지요?”
김대홍이 인사치레로 물음을 던졌지만 제 말이 곧 싱겁게 느껴졌다.
“사업요? 호호호. 염려 덕분에 잘되었지요.”
주인여자가 까르르 헤픈 웃음을 굴리었다.
“혹시, 요즘 현과장님 들르세요?”
“얼굴 좀 까무잡잡한 사람이요? 얼마동안 잘 나오시더니 요 며칠은 잘 안보이시더군요.”
“혹시, 아직까지 제 옷이랑 신발 있나요?”
김대홍은 갑자기 주인여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아마, 있을 거예요.”
주인여자도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웃음을 싹 거두어갔다. 김대홍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야겠다고 작정했다. 주인여자의 말대로 옷과 신발은 그대로 있었지만, 꼭 패배자로 돌아온 것 같아 좀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김대홍은 옷을 갈아입고 비닐 팩에다 양복을 넣고 가게로 나왔다. 이것이 도망자의 옷차림이라고 생각하니 와락 서글픈 감정에 휘말렸다.
“어머나! 옷을 찾으러 오셨나봐요?”
주인여자가 비닐 팩을 든 김대홍을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그게 아니라, 좀 빨아야할 것 같아서요.”
얼른 둘러대기는 했지만, 정말 옷 어디에서인가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김대홍은 김밥과 물을 한 병 샀다. 잠시 망설이다가 소주도 한 병 넣었지만 곧 실직을 알리는 것 같아서 죄인처럼 느껴졌다.
허둥대듯이 가게를 나온 김대홍은 산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곧장 어디론가 떠나야할지 잠깐 망설였다. 아까 집 앞에 두 사내가 얼씬거리던 일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났고, 어쩌면 지레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아 느긋해지기도 했다. 결국, 김대홍은 서울을 떠야겠다고 작정했다.
김대홍은 서울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비로소 여러 갈래의 서글픈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어머니와 공장에 나가는 아내, 그리고 재활원에 들어가 있는 아이의 얼굴이 서러운 감회 속에 분별없이 오갔다. 이제 아내와 아이와는 기약도 없는 작별을 해야한다.
김대홍은 지갑에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서 통장에서 돈을 뽑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리베이트로 받은 돈 5천만원에 손을 대야한다. 비로소 범죄가 성립되는 것 같아서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일 계좌를 추적하게 되면 돈을 빼는 모습도 촬영될 것이고, 이를 단서로 본격적인 수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별이 쏟아지는 사랑
입력 2000-10-19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0-10-19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