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10. 도망자 ⑮
 “저녁은요?”
 “기왕 신세 지는 김에 다 집시다.”
 “알았어요. 호호호. 그러면 방 먼저 보실까요?”
 여주인의 가슴 패인 원피스 사이로 희고 팽팽한 살이 몹시 육감적으로 보였다. 아침에 아이를 업고 있던 계집아이는 아직도 같은 모습으로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멍한 눈빛까지도 같아 보였다.
 “그만 방에다 뉘어라.”
 여주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계집아이는 별 반응도 없이 김대홍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적의의 눈빛 같기도 했다.
 여주인이 김대홍에게 안방과는 좀 떨어진 방을 보여주었다. 한 쪽 벽에는 모기장이 걸려 있고 이불이 단정하게 개어져 있었다.
 “종일 땀흘리셨을 게니 우선 여기서 씻으시구요.”
 여주인이 방 옆에 붙은 샤워장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식사 준비하고 있을게요.”
 여주인이 여전히 살가운 눈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김대홍은 미리 넘겨짚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눈매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잠에서 깬 아이의 울음이 들려와 김대홍의 염치없는 욕망을 재웠다. 차츰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김대홍은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는 동안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면서 욕망이 일어나 아래에 힘이 불끈 솟았다.
 김대홍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 수건으로 아래를 가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올 때 아이를 내려놓고 마루에 걸터앉은 계집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계집아이의 눈빛은 여전히 김대홍을 원망하는 눈빛 같았다.
 방안에는 붉은 노을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차츰 방안에 들어찼던 붉은 기운이 가셔지고 차츰 흑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저씨 밥….”
 좀은 창백해 보이는 계집아이가 문밖에 서 있었다.
 “그래, 가자.”
 김대홍이 슬리퍼를 끌고 계집아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었다. 계집아이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김대홍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 눈길이 이상하게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계집아이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슬픔이 간직되어 있었다.
 “네 아빠는 어디 계시냐?”
 아까보다는 좀 더 다정하게 물었다. 그러나 계집아이의 젖은 눈길이 김대홍을 올려다볼 뿐 말이 없다가 천천히 뜻 모를 고개를 저었다.
 “아유, 시장하시겄어유. 호호호.”
 식당으로 들어가니 여주인이 다정한 눈길을 넘어 요염한 눈빛으로 맞았다. 식탁에는 찌개가 끓고 있었고 소주병까지 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