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10. 도망자 (22)
 식당으로 들어가는 좁은 마당에 하얀 여름 해가 가득 널려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어디론가 떠나야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식당안에는 어제 아침이나 저녁보다 더 푸짐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스갯말로 밤일에 따라 아침 밥상에 반찬이 달라진다는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배낭을 지고 식당으로 들어서니 여주인이 쪼르르 달려나왔다.
 “쉬었다 가시지 가시게유?”
 여주인의 얼굴은 진정으로 서운한 빛이 어리었다. 김대홍이 돈을 치르기 위해 지갑을 꺼냈을 때 여주인은 좀 난감한 빛이었다.
 “돈, 주시게유?”
 인사치레가 아니라 어쩌면 진정으로 받기 싫은 얼굴이었다.
 “그럼, 드려야지요.”
 도리어 김대홍이 낯이 붉어지며 말했다. 김대홍은 밖에 넘실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시 급히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정 그러시믄 2만원만 주셔유.”
 김대홍이 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주고 이제 기둥에 기대고 서 있는 계집아이에게 만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자, 이거 과자 사먹어라.”
 그래도 계집아이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멀뚱히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아이구, 그냥 두셔유.”
 여주인의 눈빛은 어느새 어젯밤의 다정한 눈빛과 닮아 있었다. 김대홍은 돈을 아이의 눈길이 닿는 식탁에 놓고 얼른 집을 나섰다. 등뒤에서 넘어온 '또 오세요'라는 말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 속으로 들어서자 잠깐 어찔하여 비틀했다. 갑자기 까닭 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버스를 집어탔다. 비로소 정체 모를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새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그 함정의 정체를 알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핸드폰을 켰다. 마치 그런 예감이 적중하기라도 한 듯, 음성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전혀 낯선 목소리에 내용마저 뜻밖이라서 잘못 들어온 메시지 같았다. 하지만 김대홍을 추적하는 말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야, 김대홍! 나 이생즙이라는 사람이여. 어찌어찌 해서 네 전화번호 알았는데, 연락 좀 해라. 전화번호는….”
 내용이 간단 명료했는데 대체 '이생즙'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황당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김대홍이란 이름이 정확하게 들어온 것으로 보아 잘못 들어온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러면 김대홍을 추적하기 위한 메시지란 말인가. 갖은 불길한 추측들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