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희망으로 가는 길(30)

 “그나저나 만나는 고등학교 적 아이들 중 만나는 애들 있냐?”
 김대홍은 이기용이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였기 때문에 아는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짐작하며 물었다. 그런데 여러 아이들의 소식을 두루 알고 있었다. 특히 대전 부근의 낯선 아이들의 근황에 이어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소식까지 꿰뚫고 있었다.
 “조동창이는 대학교수하고, 방두석이는 신학대학 나와서 목사님, 고황수는 얼마 전까지 회사 댕기다 짤려서 뭔 사업한다고 이리 저리 바쁜 모양이더라. 김서창이는 무슨 공장을 하는데 그럭저럭 잘되는 모양이더라.”
 “고황수라니? 문학하던 그 친구 말이냐?”
 “그랬던가? 난 통 무식해서 뭐 그런 거 모르잖냐.”
 “혹시, 피정호 소식 들었냐?”
 김대홍은 고아원에서 자라 침울하게 그늘진 얼굴을 떠올리며 물었다.
 “피정호? 갸는 무슨 병이 있어서 죽었잖여. 공장이 좀 되었던 모양이던데 김서창이한테 회사 고스란히 넘겨주고 죽었다지 아마.”
 “그려?”
 김대홍은 또 다른 충격에 사로잡혔다. 세상 그만큼 살다 죽으려고 그렇게 고뇌를 했단 말인가. 한 순간 삶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여러 차례 자살 고비를 넘겼다. 아이들 가슴 한 구석에 빈자리를 만들어 주고 떠나는 게 얼마나 가슴 저린 일이냐?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지 아비가 이런 처지라도 살아서 목소리라도 들려주는 게 아이들에게는 희망이더라.”
 이기용이의 가슴 저미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는 것도 침울하게 가라앉아 가는 자신을 끌어올리려는 몸짓 같았다.
 “니 말을 들으니 살아 있는 것도 소중한 일인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있어야지.”
 김대홍은 소주잔을 털어 넣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완연히 어두워진 밖에서는 이제 비가 두런두런거리듯이 내리고 있었다.
 “너 앞으로 무슨 일을 할거냐?”
 “글세 아직 며칠 떠돌아 댕겨 보았지만 뭐 시원한 거 찾지 못했다.”
 “그려? 너 그럼 내 일 좀 도와 줘라.”
 솔직히 이기용의 말이 터무니없게 들렸다. 대체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무슨 일을 돕는단 말인가. 장사를 같이 하자는 말인가. 한시 급히 이기용이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이라야 부려먹기도 부담 없고, 사업 비밀도 유지되고 뭐 그런 거 아니냐? 그렇다고 내가 무슨 뾰족한 능력 있는 것두 아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