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폭풍의 계절
 12. 더 높은 곳을 향하여⑫

 어제 발생한 사직동 여관 피살 사건에 대해 경찰은 함께 투숙한 사내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이를 뒤쫓고 있습니다….
 순간 김대홍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차가 출발을 하면서 운전사가 김대홍을 바라보며 물었다. 순간 김대홍은 얼른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시외터미널로 갑시다.”
 “예.”
 운전사는 마침 라디오 뉴스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였던지 덜컥 카세트를 밀어 넣었다. 기이하게도 함대령의 신나는 신바람 메들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요즘 인기가 있나보다 싶으면서, 김대홍에게는 그게 왜인지 쓸쓸했다. 대체 그 사건을 왜 타살로 보게되었을까. 현장에서 유서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김대홍은 경찰에 자진해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행여 고스란히 누명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관 여주인이 기억을 더듬어 몽타주를 만들면 김대홍의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김대홍은 얼른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함대령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런 나이에도 악단을 지휘하면서 정열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좀은 무섭게 보였다. 마치 함대령의 노래가락이 김대홍을 휘어 감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작은 도시여서 택시는 제방둑 도로를 지나갔다. 마침 어제 그 여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 세워 주세요.”
 운전사가 힐끗 바라보는 바람에 김대홍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쳐서 흠칫 놀랐다. 택시를 내려 여관을 피해 음식점 앞으로 갔다. 흙바닥이 빗물에 패여 쓸려 내려간 자리에 흰 농약병 마개가 떨어져 있고, 좀 떨어진 도랑가에 농약 병이 걸려 있었다. 마치 증거물을 수집하듯이, 김대홍은 농약병 마개를 집어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제방 도로 위로 올라왔다. 어쩌면 최후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물건일지도 모른다. 호주머니 속에서 휴지를 꺼내 흙이 묻은 농약병 마개를 싸서 배낭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택시가 시내버스터미널로 들어서면서 덜컥 겁이 났다. 어쩌면 시외버스와 같은 관문에는 이미 형사가 잠복해 있는지도 모른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을 때, 김대홍은 그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정복을 입은 경찰 두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김대홍은 태연히 버스표 파는 창구로 다가갔다. 경찰의 시선이 와 닿는 것 같았다. 제발 여기만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몇 시차인가요?”
 김대홍은 누군가가 다가설 것 같은 위협을 느끼며 물었다.
 “얼른 나가 보세요.”
 김대홍이 급히 출구 쪽으로 다가갔다.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