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점(紅一點)(6)

 심지어 인종황제의 미망인 고태후까지도 그의 친정이 신법으로 인해 많은 손해를 입게 되자 왕안석을 혐오했다.
 '어디 두고 보자! 네놈도 언젠가는 실수할 날이 올 것이다!'
 조정 대신들도 왕안석에 대한 극렬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신법보다 훌륭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구나 국가를 어떻게 하든 부흥시켜야 하겠다는 황제나 백성들의 여망을 충족시킬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었다. 기껏 그들은 이렇게 투덜거리기만 했다.
 “지금까지의 전통을 깨뜨리지 않는 구법이 훨씬 좋은데!”
 어쨌건 왕안석은 여혜경 한강 등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관료들로 '신법당'을 구성해 정책을 맹렬하게 밀고 나갔다.
 그런데 왕안석을 무너뜨릴만한 진짜 강적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아무도 몰랐다. 바로 사마광이었다.
 그는 왕안석의 집권시대가 되자 대뜸 관직을 사임하고는 낙양으로 숨어들어가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 저술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어? 왕안석이가 아직도 제거되지 않고 활개를 쳐?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깨뜨리고, 세상의 인심을 어지럽히는 신법을 악착같이 고수해? 그렇다면 내 다시 세상으로 나가 그자의 신법에 대항하는 구법(舊法)의 당(黨)을 만들어야 되겠다! 언젠가 어린시절 복숭아 서리를 떠나던 날 왕안석은 합세하지 않았지! 그자는 언제나 내가 꾸미는 일을 무조건 반대했고, 제멋대로 제 갈길만 꾸준히 갔지!'
 사마광이 판경으로 다시 나타나자 그는 자연스럽게 구법당의 당수가 되었다. 한기, 여회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당·송 팔대가에 속하는 소동파 구양수 등도 이에 합세해 왕안석의 신법을 두들겼다.
 그런 사마광은 어려서부터 천재소년이었다. 춘추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을 묘사한 '좌전(左傳)'을 듣기만 하고서도 그 요지를 간단하게 잡아 주위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만큼의 신동이었다. 술독에 빠졌던 여혜경을 그의 천재성이 아니고서는 살릴 수 없었던 사실도 그의 인물됨을 알려주는 단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마광은 한대(漢代)의 사마천처럼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감지한 황제가 사마광을 독려해 만든 것이 통사 '자치통감'이었다.
 왕안석 보다 머리가 뛰어나다고 자부하던 사마광으로서는 왕안석의 그런 출세가 달가울리 없었다.
 '그자가 항상 나를 반대했듯이 나 역시 그자를 무조건 반대하겠다!'
 이것이 사마광의 맹목적인 신법 반대의 이유였고 명분이었다. 그래서 '자치통감'이라는 대작을 저술해 놓고도, 오로지 왕안석을 반대하기 위하여 간행을 뒤로 미룬 채 세상으로 달려나왔던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라에는 전운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