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8대1이라는 헌법재판관의 절대적 다수가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을 선택했다. 헌재는 “수도이전 문제가 헌법 개정 사항이거나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역사적으로 훌륭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 헌법의 정신을 무시한 채 국가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 집권세력에게 인류 보편의 가치인 헌법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는 지난 대선에서 주요 쟁점이었고 국회에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통과됐으니 형식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부, 여당이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결과에 대한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헌법재판관의 의견들 중 김영일 재판관의 의견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 재판관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 제72조가 규정하는 국방·통일 및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므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 대상이 된다”며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행위는 자유재량행위이나, 재량권의 일탈, 남용이 있는 경우 해당 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도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지 않은 것은 헌법 제72조의 입법목적과 정신에 위배되고 자의금지원칙과 신뢰보호원칙에 반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헌적인 것이다”라며 “대통령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고 국민은 대통령의 의무에 상응하는 권리인 국민투표권을 가진다”고 밝혔다.
 
이는 수도이전의 구체적인 안을 놓고 국가경쟁력 향상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진지하고 깊이 있는 토론과 검토가 부족했으며 또한 국민투표를 통한 전 국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았으며 여당과 정부가 국민들의 표만 얻는데 관심을 둔 정략적인 시도였음을 국가의 발전과 헌법 정신만을 생각하는 헌법재판관들이 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 동안 수도이전반대 범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수도이전반대를 위한 모든 단체들과 이에 동참한 국민들의 수도이전반대 운동이 지역과 본인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입장과 애국충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토론공화국이라는 별칭까지 듣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최근에 와서 수도이전, 국보법 폐지를 포함한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중차대한 정책을 추진할 때는 오히려 국민의 의사를 묻거나 존중하지 않고 정략적 차원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책에 대한 합당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실사구시의 자세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공식적인 공청회, 청문회, 토론회, 여론조사 등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국민적 논의를 거친 후 국민투표로 국민의사를 물어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철학자 루소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선거 기간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많은 국가가 국민투표, 주민소환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한 것은 루소의 경고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스위스 같은 나라는 지난 30여년 동안 국민투표를 70회 이상 실시하였다.
 
수도이전 문제는 현 정부의 명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며 논란이 증폭되고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수도이전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특정한 시점에서의 정치논리로 결정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앞으로 수도권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방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정부, 정치권, 국민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이제는 전 국민이 갈망하고 있는 나라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영해(한양대 교수·분당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