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는 '한국'이 있는가? 우리 사회에 한국영화 열풍이 분지 오래다. 대박영화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영화산업이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그 영화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보면 도무지 개운하지가 않다. 자기부정과 자학, 염세적 냉소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탓이다.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왕의 남자'는 조선 시대 연산군 조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누구도 행복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왕은 절대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기로 부서진지 오래다. 주변의 신하들은 출세에 어두워 공공연히 뇌물을 받아 챙기고 매관매직을 일삼는다. 왕은 왕대로 혼란스럽다.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며, 국정을 제대로 이끌만한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런 왕과 신하들이 경영하는 나라의 백성들은 더 죽을 맛이다. 보통 사람들의 상징이랄 수 있는 광대들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 신세나 다름없다. 권력이 부르면 가야하고 때리면 맞아야 하고,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왕도, 신하도, 백성도 절망에 갇혀 있는 패자들일 뿐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가라는 점에서 보면 혼란스럽다. 강원도 산골, 동막골의 평화를 깨는 존재는 미군이 중심이 된 연합군이다. 남한의 국군과 북한의 인민군은 동막골에서 조우하지만 곧 경계심을 걷어버리고 형, 동생하며 가족처럼 지낸다. 전쟁의 원인이나 책임에 대한 고민은 없다. 마을 주민들 역시 그들을 해치지 않는 한 누구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마을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엉뚱하게도, 조난당한 미군 조종사를 찾으러 국군 수색대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들은 마을 주민들을 위협하고 협박한다. 적과 아군, 동지의 개념은 멀리 날아간다.

앞서 흥행 바람을 일으켰던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들도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비판하기는 마찬가지다. '태극기…' 역시 6·25 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한 가족의 행복이 깨지는 것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국군의 행정 때문이다. 마구잡이로 젊은이들을 군대에 끌고 가는 바람에 형제의 비극은 시작되고, 가족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실미도'에 등장하는 국가 공권력은 무자비한 폭력 그 자체다. 특수부대를 만든다며 아무나 잡아들이고, 불평하거나 저항하는 자는 냉혹하게 죽여 버린다.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 특수부대가 필요없게 되자 흔적 자체를 없애려 한다. '공동경비구역JSA'는 남북 분단의 대치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국가적 정통성은 남한보다는 북한 쪽에 있는 것처럼 강조한다.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같은 영화들은 조직폭력배들이 주인공이다. 하는 일은 관할 구역 내의 업소들을 겁주어 돈을 갈취하거나 상대 조직원들을 제압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나름대로 의리와 명분, 사회정의를 위해서 일하는 존재들처럼 묘사한다.

그렇다고 경찰관들이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투캅스' '공공의 적' 같은 영화들에 등장하는 경찰은 부정과 비리에 젖어 있거나, 법과 절차를 뛰어 넘어 스스로 세상을 단죄하려 한다. 법의 성실한 집행자가 아니라 법을 등에 업은 무법자의 이미지다. 폭력배보다 더 교활하고 위험한 존재다. 그들 앞에 기업가나 교육자들은 뿌리까지 썩은 사회악으로 비친다. 누가 백로고 누가 까마귀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개별 영화들만으로 본다면 만드는 사람의 극적 상상력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지만, 흥행을 주도하는 주류영화의 큰 흐름이 우리 사회를 긍정하며 통합으로 향하게 하기보다는 전복과 분열적 자기부정을 조장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면 가볍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영화'를 지키고 보호하자고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정신, 통합적 가치관을 지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처럼 보인다. 한국영화가 정말 한국영화다운가라고 묻는 이유다.

/조 희 문(상명대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