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고
단할 때 우린 옛기억들을 떠올리지요. 늘 행복한 과거만 있었던 것은 아니
지만, 그래도 추억이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지
금부터 17년인가 18년 전, 공적이지도 그렇다고 사적이지도 않은 자리에서
저는 기형도를 처음 보았습니다. 함께 자리에 참석했던 기형도의 국민학교
동창이자 내 친구는 귀엣말로 “저 머리 긴 애 있지? 기형도. 너도 알지?
그 '안개'라는 시 말이야.”라고 안개처럼 속삭였지요. 기형도는 별로 말
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또렷하게 기억을 되살
릴 수는 없지만 아마 그날, 집으로 돌아와 기형도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
던 신문에서 오려두었던 '안개'라는 시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지상에서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는 기형도를 보았습니
다. 사회면 귀퉁이에 얼굴 사진이 달린 기사는 당연히 부음기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저는 너무 놀라서 신문을 덮어 버리고 말았지요. 그리고 이렇
게 중얼거렸습니다. “기…형…도…가…죽…었…다!” 종로의 한 허름한 극
장, 질식할 것 같은 처절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기형도는 잠자듯이 쓰러져
있었으며, 새벽의 극장을 청소하던 아줌마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시신을 발견했고, 그의 나이 겨우 서른살이었다는 내용의, 그날의 일단기사
만큼 슬픈 기사를 읽어 본 기억이 아직 없습니다. 그날 이후로 '기형도라
는 시인이 있는데…'가 아니라 '기형도라는 시인이 있었는데…'로 시작되
는 그와 관련된 글을 읽을 때마다 안양의 그 모임에서 좋은 웃음을 짓던 기
형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3월, 특히 기형도가 떠난 3월7일이 오
면 시인이 죽고 없는 이 삭막한 세상에 두발을 딛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 힘들어 특히 우울하지요. 그날, 저는 기형도가 남긴 단 한권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刊)을 나지막히 읽곤합니다. '즐거운 책읽
기'가 아닌 '괴로운 책읽기'지요. 시집을 읽는 그 시간, 정확히 13년전 그
시간에 기형도는 그 빈 극장의 어두운 공간 속에 홀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
리고 그의 시 '빈집'의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처럼 그 스스로 극장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말
았지요.

'입속의 검은 잎'은 그가 죽은 해인 89년에 초판이 간행됐습니다. 유고집
인 셈이지요. 벌써 1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서점에는 요절한 시인의 시집
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
었고,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으며, 이 시집이 그의 유일한 시집이라는 신비
스러움이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슨 인연이었는지 시집
의 해설을 김현 선생이 썼다는 것도 스테디셀러가 된 한 원인일지 모른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기형도의 시보다 말미에 붙어있는 김
현 선생의 해설을 더 좋아합니다. 1년후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하듯 그 안에 펼쳐놓은 '죽음에 대한 명상'이 더 가슴을 저미게 만들곤 하
지요. 을씨년스럽고 적막하며 암울한 세계만이 존재하는 기형도의 시를 가
리켜 김현 선생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시인이 늘
희망만을 노래할 수는 없지요. 그런 면에서 기형도는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
보였던 '시인'입니다. 만일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아직도 그런 절망적
인 세계를 노래했을까, 저는 그게 무척 궁금합니다. 2월 한 달이 다 지나갔
군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특히 저 2월의 달력이 찢겨져 나간다는
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 벌써, 봄입니다. 이
좋은 봄날 소주 한 병 옆에 끼고 그가 잠들어 있는 안성에나 가볼까 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