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라는 이름. 이 두 글자를 생각해본다. 푸른 대지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저마다의 이름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때마다 내 상상으로 이름을 붙여보는 들꽃들로 이루어진 산길.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감상적인 모습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군대에서의 경험이 그러했다. 진지 공사라는 명목으로 무수한 생명들을 나의 낫질과 삽질로 앗아갔던 것이다. 물론 이등병 시절,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병장이 되었을 때는 많이 달랐다. 인간의 욕심이 이렇게 쉽게 자연의 소중함을 앗아갈 수 있음을 그 때가 돼서야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대를 하고 사람들이 도시라고 이름 부르는, 푸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콘크리트의 삭막함 속에서 지내면서 나의 체험은 삶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그렇게 잊혀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스브루크이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조그마한 도시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말로 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잡은 책이 바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모악산에서 날아온 편지’라는 책이었다. 타지에서 접한 첫 번째 우리말 책이었다.

저자인 박남준 시인은 40이 넘은 나이에 모악산 기슭에서 혼자 지내면서 자연을, 푸른 하늘과 숲속의 푸르름을 벗삼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푸른 나무들과 둥지를 틀기 위해 날아온 새들, 시냇물로 모여드는 버들치 30여 마리, 이 모든 것을 그의 가족이요 형제며 벗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추워져가는 가을밤의 시들시들해지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어린 생명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모습과 붉게 매달린 채 꽃처럼 피어 있는 감나무와 마당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 그곳에 낮게 엎드려 있는 남루하게만 보이는 자신의 집에 등 따뜻하게 불 지피고 봄에 뜯은 고사리나물 무쳐 먹자며 초대의 글을 띄울 때에는 정말이지 함께 며칠 묵고 오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군에서 품었던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이 아름다운 글을, 얼마 전에 군대라는 곳에서 무사히 제대하고 새로운 삶의 여정을 꾸려가고 있는 너무 소중한 동생 명석이에게 보내주고 싶다. <박형순> [책 대한서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