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중요한 선거를 두 번 지켜봐야 한다. 하나는 4월의 대한민국 총선, 다른 하나는 12월 미국 대선이다. 한국 총선에서는 그래도 20세 이상 국민이면 미력하나마 신성한 한표를 행사할 수 있지만, 내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세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엔 위대한 아메리카 국민이 아닌 한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표를 더 적게 얻은 인물이 당선자가 되어 세계의 정치와 경제, 심지어 우리의 목숨까지 쥐락펴락한다 해도, 알량한 국익 때문에 그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동생 덕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는 미국을 '부자들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맹활약했다. '돈 많은 자들'의 세금은 최대한 깎아주는 대신 '일하는 자'의 부담으로 나라 살림을 꾸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미국 재정은 흑자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적자로 돌아섰다. 9·11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맞았지만, 부시는 놀라운 '지도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까불지 마라, 어떤 국가도 미국(부시)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전치 못하리라. 부시의 치세에 미국은 세계무역의 규칙에서도, 지구적인 환경보전 노력에 있어서도 유일하게 룰 밖에 존재하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걸 누가 몰랐나? 웬만한 한국인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미국의 선택은 언제나 옳으며, 그걸 함부로 비판하는 자는 좌파가 분명하다고 믿는 준 미국인들만 빼고. 그런데 글쎄, 폴 크루그먼이라는 저명한 경제학자가 '대폭로'하고 나섰으니, 이를 어째야 좋을까. 그는 분명 미국인이고, 어느 모로 보아도 좌파가 아니다. '대폭로'는 크루그먼이 주로 뉴욕 타임스에 실었던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명예 미국시민'들은 이런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조차 심기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대폭로'는 부시의 연기를 폭로한다. 지난 2000년 선거전에서 부시는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실은 TV에서 개혁을 연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부시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참모들, 그리고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와 언론계와 경제계를 장악하고 있는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의 '혁명적 음모'를 통렬하게 파헤치고 조롱한다.

그들은 미국을 가진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사회보장? 복지? 국가의 책임? 지난 시절 미국인들이 힘겹게 수립한 원칙과 규칙들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다! 기업인들의 '탐욕', 특히 텍사스의 에너지기업과 같은 네오콘의 돈줄 기업의 '탐욕'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그들은 이러한 강령을 감추기 위한 논리와 궤변을 끊임없이 꾸며내고 지어낸다. 크루그먼은 그 이면을 끊임없이 뒤집어 보여준다.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관계로 크루그먼의 폭로를 세세하게 다 알아듣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가 폭로하는 문제의 본질이 뭔지, 뭐가 잘못되고 있는 지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네오콘들의 흑심이 얼마나 지나쳤으면 이 온건한 자유주의자마저 분노케 했을까. 거기에 더해, 재치와 유머와 용기가 넘치는 크루그먼의 화법은 영양가 많은 덤이다.

다가올 한국 총선의 화두가 '물갈이' '판갈이'라면, 미국 대선의 화두는 '(극우보수) 혁명의 완성이냐, 좌절이냐'가 될 터이다. 그걸 아는 한국인에겐 표가 없고, 막상 표를 행사할 미국인은 그걸 모르는 듯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양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