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못다 밝힌 이야기와 퇴장의 비애마저 노을로 감추고 저물어가는 해처럼 그들은 멀어져간다. 그들에게 퍼뜩 말을 걸고 싶어지는 건, 꼭 한박자 늦게 찾아오는 깨달음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몇년째 전국의 종가 순례길에 오른 이연자(사단법인 한배달 우리차문화원장)씨가 '명문종가 이야기'를 펴냈다. 종가의 솟을대문엔 역사의 석양이 비껴 있지만, 그 안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생활문화를 더 늦기 전에 건져 올리려는 고단한 발품의 결실이다.
 
이씨는 전통의 맥을 올곧게 지켜나가고 있는 전국의 종가 18곳을 답사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멋스러운 생활문화와 제례, 통과의례 등 그 속에서 여전히 삶의 훈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종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맛깔스레 그려낸다.
 
99칸 운조루를 지키는 구례 문화 류씨 류이주 종가, 미라가 40년 전 사랑의 편지를 안고 있는 고성 이씨 귀래정파 종가, 98세 종부의 아름다운 죽음을 전통예법대로 치르는 안동 김씨 정헌공파 해헌 종가, '주자가례' 그대로 제사에 차를 올리는 신안 주씨 경안 종가, 태풍으로 고려 고분 풍속벽화가 드러난 밀성 박씨 송은공파 시위공 종가….
 
호주제 폐지의 시대에 이씨의 종가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288면, 값 1만8천원. 북21 컬처라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