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무구한 욕망과 광기어린 열정으로 불꽃같이 살다 안타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요절시인들의 발자취를 조명한 책 '죽은 시인들의 사회'(새움 刊·우대식 著)가 세상에 나왔다.
김민부(31세) 임홍재(37세) 송유하(38세) 김용직(30세) 김만옥(29세) 이경록(29세) 박석수(47세) 원희석(42세) 기형도(29세) 등 생의 고난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살다 간 시인들.

시인이자 평택 진위고 교사인 저자는 요절시인들의 고향이나 그들이 거쳐간 장소 등 시인의 아스라한 흔적들을 찾아 1만여㎞에 달하는 길을 걸어 사진을 찍고 유족 또는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써내려갔다.

2005년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현대시학'에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이란 제목으로 저자가 연재했던 글들에 기형도 시인을 취재한 미발표 원고가 더해져 이번에 책으로 묶었다.
자신의 불우함을 거울에 비춰보며 밤마다 궁핍과 싸웠고, 기찻길 옆 판자촌에 몸을 누이고 온몸을 굉음으로 치환시키며, 외딴 논두렁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한 많은 열정의 시인들.

가곡 '기다리는 마음'으로 널리 알려진 부산 출신의 천재 시인 김민부는 화마(火魔)에 휩쓸려갔고 서울 변두리 기찻길 옆 판잣집에서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야 했던 김용직은 술로써 시를 쓰다 간경화로 생을 마감했다. 이밖에도 농약을 마시고 자살에 이르거나(김만옥), 심야극장에서 의문의 죽음(기형도)을 맞이한 시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은 예술가에게 부여된 '운명'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요절시인들의 때 이른 죽음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진지한 삶과 매혹적인 작품세계에 있다. 시인들이 남기고 간 몇 편의 시들은 세월의 더께가 쌓일 대로 쌓인 오늘에 와서도 탁월한 생명력으로 빛을 발한다.

“나는 꽃나무.언제 피며, 무슨 색으로 머물며,어떻게 지며, 얼마나 망설이며 살아야 하는지(중략)나는 동상(凍傷)에 걸린 꽃나무.가지 끝에서 미소가 떠난다.가지 끝에서 바람이 모인다.나는 생각하며 사는 꽃나무.더 아프게, 더 뜨겁게, 더 예쁘게, 더 착하게,더 고웁게…”(송유하의 '나·꽃나무·바람' 중)

“저녁 노을이 지면신(神)들의 상점(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성(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중략)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城)(중략)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城)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도 역시”(기형도의 '숲으로 된 성벽' 중)

저자는 “요절이란 물리적 죽음과 의식의 죽음이 한 지점에서 만나 불꽃처럼 타오르다 소멸해간 흔적”이라며 “소멸의 흔적을 마주했을 때 어떤 통일적 인상을 느끼게 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죽은 시인과 죽지 않은 시를 동시에 만나는 순간의 벅찬 '어처구니'가 저자를 더더욱 이 작업 안으로 몰아붙였다고 덧붙였다. 272쪽. 9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