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소설가·예술원 회원)
지난 8월9일부터 9월4일까지 필자는 한 달 가까이나 미국의 서부와 멕시
코, 그리고 쿠바 등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 여행 목적의 첫째는 샌프란시스코의 우리 교민들이 운영하는 '가주대
학'에서 벌써 4년째 벌이고 있는 '우리 문학 캠프'의 초청 강사 일이었고,
두번째는 멕시코의 고도(古都) 과달라하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사실은 2
년 전에 필자의 장편소설 '소시민'이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현지에서 책으
로 나와 언제든 한번 가보아야겠거니 하고 마음만 먹고 차일피일 하던 중
에 마침 그 소설의 독회(讀會)모임이 있다기에 부랴부랴 집을 떠났던 것이
었다. 그러니까 필자로서는 이번 여행의 주목적도 이 두번째 쪽이 될 수밖
에 없었다.
그 독회 모임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필자로서는 도무지 감
(感)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 소설의 역자이자 태평양 연안의 소도시 꼴리
마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유해명 교수가 사전에 알려오기로는, 과달
라하라 대학과 꼬르마 대학 두군데서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국은
그렇게 과달라하라 공항까지 마중나온 유해명 교수 차로 곧장 200㎞나 된다
는 꼴리마까지 가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꼴리마 대학에서의 그 '소시민'독
회라는 것에 원작자 자격으로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필자는 깜짝 놀라지 않
을 수 없었다. 주로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그 하나같이
진지한 수업태도도 태도려니와, 그 대학의 인문대학 교수 한 분과 문학평론
가 한분이 제각기 30분 가량씩 필자의 그 소설을 두고 시시콜콜 해설을 하
고 있지 않은가. 발제자들 자리의 필자 옆에 앉았던 그 소설의 역자 유해
명 교수가 그 두분 발언의 주요 대목은 그때 그때 귀띔해주어 대강 무슨 소
리를 하는지는 원작자로서 훤히 짐작이 되었다. 아아, 이럴 수가… 필자로
서는 너무 과남하고 너무 과분하였다. 적어도 저 두 분은 필자가 35년 전
에 쓴 그 소설을 꼼꼼히 챙겨 완독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나서 학생
들 속에서 너댓의 질문이 나와 필자는 원작자로서 응답을 하였고,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끝이 났는데 그 자리서 '소시민' 여덟권이 팔리
는 것이 아닌가. 모두 그 자리에 앉았던 학생들이었다. 원작자의 사인을 요
구해와 나는 기꺼이 응하기까지 하였다.
이튿날은 다시 과달라하라 대학에서 비슷한 모임이 두번째로 있었는데,
어제 모임보다는 규모가 작고 조촐하였으나 현역 시인이라는 분의 날카로
운 질문이며, 멕시코 공산당원이었다가 지금은 공산주의 이념에 실망, 동양
의 노장(老莊)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잘 생긴 청년 하나가 그 자리서 '
소시민' 한 권을 사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여 흔쾌히 응했다. 나이를 물어보
니 스물 여덟 살이라고 하였다. 그밖에 두어 군데 신문과 좀 긴 인터뷰를
했는데, 그 자리서 내심 놀란 점도 상대 기자가 필자의 '소시민'을 완독하
고 있는 점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는 20분 예정했던 현지 라디오 생방
송을 40분 넘게 했고, 그러고 나서 멕시코시로 오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직
전에 필자는 정말로 기겁을 하게 놀랐다. 그저께 인터뷰했던 내용이 이 도
시 대표적인 신문인 'EL INFORMADOR(엘 인포르마도르)' 문화면 전면을 필자
의 큰 사진까지 곁들여 통째로 채우고 있질 않는가.
그렇게 멕시코시를 거쳐 3박4일간 쿠바까지 들어갔는데 필자는 그곳 작가
협회에도 '소시민' 스페인어판과 과달라하라 신문 문화면 전면을 가져다 주
었다. 그리고 다시 멕시코시로 돌아와 이번에는 멕시코의 명실공히 대표적
인 신문일뿐 아니라 중남미의 스페인어권 나라 전체를 커버하고 있다는
'EL UNIVERSAL(엘 유니버설)'에서도 인터뷰를 신청, 문화면 1면 하단에 큰
사진 곁들여 내주던 것이었다.
필자가 겪은 이 이야기를 일말의 쑥스러움을 무릅쓰며 털어놓은 것은 다
름이 아니다. 그 장편소설 '소시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으로부터 35
년 전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6·25전쟁중인 1951년 임시수도 부산거리의 사
람살이를 당시의 좌·우익, 남·북 관계를 밑자락에 깔고 다룬 작품인데,
멕시코 사람들로서는 오늘에 와서 읽어도, 저 먼 극동에 위치한 이 나라의
분단상황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신선하게 이해가 됐을 것이었다. 실제로
바로 이런 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아마 모르긴 해도 이때까지 멕시코 사
람들이나 지식인들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문학이라는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고 막연히 생각해오다가 이번 필자의 그 소설을 보고 내심 와락 놀랐던 것
이 아니었을까.
흔히 21세기는 문화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들 소리소리 지르고 있지만,
현지공간에서 이런 일에 후속대처하는 양태는, 원체 기왕에
멕시코를 다녀온 寸感
입력 2001-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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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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