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선거에서 세 지역 모두 한나라당이 휩쓸었다. 투표율은 서울 두 곳의 경우 42.5%라던가.
한 교수는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유권자는 밀려나고 여야 정치세력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면서 “폭력, 금력, 향응 등의 행태가 자유당 때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필자도 이 말에 십분 공감한다. 특히 '자유당 때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라는 대목….
실제로 소위 이용호 게이트, 백궁정자지구 부정불하 사건, 국정원 경제단장 외압 사건, 주가 조작사건, 수산시장 불하시도 등등, 어느 것 하나 그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여야는 오로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 물어 뜯으며 정치권 전체의 체통을 여지없이 추락시켜왔을 뿐이었다. 필자 부터가 그 하나 하나의 요상한 사건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을 뿐더러 애당초에 관심도 없다. 시정(市井)속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 태반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 엄청난 괴리(乖離). 어쩌다가 우리 정치권이 끝내는 이 지경으로 까지 떨어져 버렸는가 싶어지고 내년의 '대선'이다 '지방선거'다 하는게 지금 보는 이런 정치권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진다 싶으면 지레 끔찍스러워지기 부터 한다.
하여, 이런 경우에 닥치면 흔히 그렇듯이 아주아주 시간을 거슬러 한번 머얼리 멀리 달아나 보기로 한다.
가령, 지금부터 100여년전, 이사벨라 L 비숍이라는 영국 부인이 1897년에 펴낸 '조선기행'의 머리말 속의 다음과 같은 부분.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에 걸쳐 나는 몽고로이드의 특성 조사의 일환으로 네번에 걸쳐 조선 여행에 나섰었다. 이 때 처음 받은 인상은 이 정도로 재미없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여기 말고 다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청일전쟁 전후에는 극심한 정치불안과 급격한 변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나라 운명 등으로 강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나라 접경지대인 시베리아에서 본 러시아 통치 하의 조선인들의 근면함은, 조선 본국에서 느꼈던 절망과는 달리 이 나라 미래에는 밝은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처음엔 짙은 혐오감을 안겨주지만 오래 체재해 보면 이쪽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다…'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가장 놀란 것은 곳곳에 호랑이의 출몰이 그렇게나 많아서 어느 집 부인이 물려갔다, 혹은 애가 물려갔다는 소식이 노상 끊이지 않은 점, 그리고 말단 관리들의 횡포가 엄청 심했던 점이었다. 여북하면 백성들은 부지런을 피워 벌이가 괜찮아 보이면 하급 관리들의 수탈 표적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기까지 했을 것인가. 이리하여 남부여대하고 시베리아 쪽으로 살 길을 찾아 떠나기도 하였는데, 당시 러시아 정부는 황무지 뿐이던 극동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우리 이민을 환영했을 뿐 아니라 갖가지 지원까지 해줘 앞에서 보이듯이 그 쪽 조선사람들이 국내 조선 사람들 보다 더 알뜰하게 살더라는 이야기.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필자는, 오늘의 우리 상황까지 떠올리며 새삼 착잡한 느낌에 휘감겼었다.
그렇게 백여년 전의 그 우리네 삶과 비교해서 오늘의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그 옛날의 그 아전들, 하급관리들의 횡포는 거의 없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대신에 요즘 와서는 소위 왈, 선량(選良)이라나 '엘리트'라나 하는 것들을 낀 괴이한 도적 떼들의 무한(無限)탐욕들만 더더 기승을 부리게 되지는 않았는지…. 이 글의 앞에서도 예를 들었던 이용호 게이트니, 무슨무슨 불하사건이니, 모모의 외압사건이니, 주가조작, 수산시장 불하시도 등등 모두가 우리 시정(市井)속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저것들이 사그리 무슨 '도깨비놀음'들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부터가 그렇다. 그것들 하나하나에 애당초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관심을 갖는다고 쉽게 알 수도 없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도 정치권 속의 '서로 물어뜯기 놀음'으로만 활용되며 과장된 점도 없지 않은 것 같으니, 정치권내의 여·야라나 뭐라나, 끼리끼리만 몰골사납게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이,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오늘의 우리 정치권이 아닐까.
그리하여 결론은 하나다. 다음으로 치러질 내년의 '지방선거'나 '대선'은 지난번 선거의 연장선으로 있어질 성질이 애당초부터 아니고, 바로 현 정치권이 송두리째 명실상부하게 환골탈태(換骨奪胎)되는 과정으로서만 제대로 설 자리가 있어질 것이다. (소설가·예술원회원)